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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un 13. 2024

나는 행복한 사람

2010년 1월 23일(토) 일기


    오늘 C 신경정형외과에 입원했다. 어제 K 대학교에 일하러 갔다 왔더니 컨디션이 더 악화되었다. 원래는 허리와 가슴만 아팠는데 이젠 고관절, 목, 등, 다리, 팔까지 다 아프다. 

    오래 비워둔 방인지 TV도 안 나오고 변기 물도 안 내려가고, 온풍기도 작동되지 않았다. 3시간 만에 대충 문제를 해결하고 주사를 한 대 맞았더니 좀 살 만 해졌다.

    아무래도 다음 주 월요일에 회의에 참석할 확률은 10 프로 미만이라 생각되어 후임인 J 선생을 병원으로 불렀다. 다른 연구원들과는 개별적으로 업무 연락을 취했다. 조금 마음이 놓인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S 병원에서 받아온 다발성골수종 안내 책자와 환우 체험기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다발성골수종의 전형적 증상이 허리와 가슴 통증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바로 나의 증상이었다. 그런데 어쩜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도 낮을까? 일반인은 그렇다 치고 정형외과 의사들은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방문한 정형외과의 의사 중 이 병명을 언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책자에 나온 설명과 C 대학병원 J 교수가 했던 설명이 연결되면서 이 병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백혈구가 비정상적인 형질세포(암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병은 일차적으로 뼈의 통증과 손상을 유발하므로 골절 위험이 매우 높다. 어제 진통제를 먹고 몸이 좀 괜찮아진 듯하여 외출한 것은 큰 실수였다. 웬만하면 진통제를 자제해야겠다. 두 번째 위험요인은 신장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 번째 위험요인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열이 나면 즉시 응급실로 가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는 폐렴의 위험성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복용하는 약은 하루 두 번 먹는 스테로이드제 40알과 호르몬 1알, 제산제 1알이다. 스테로이드는 형질세포를 죽인다고 한다. 따라서 대용량을 복용하면 골수 속의 형질세포를 급속도로 감소시켜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하니 기대해볼 일이다.  

    한 달 동안의 먹는 약 복용이 끝나면 주사약을 맞는다. 주사약 회수는 사람마다 다른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체험수기의 주인공은 총 24회를 맞았다고 한다. 이 사람은 주사 치료를 8회 받은 후에 조혈모세포를 채취하여 자가이식을 받은 다음 퇴원했고, 퇴원 후에 추가로 주사 치료를 16회 더 받았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치료 시작 후 넉 달 만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셈이다. 이 사람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나도 5월쯤엔 자가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치료가 끝난 후 축농증과 오십견 치료를 받았고 4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고 했다. 2006년 2월에 확진 받고 2009년 크리스마스 현재 잘 지내고 있다 한다. 나의 미래 그림이 보이면서 자신감과 희망이 생긴다. 


    엄마의 기도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지만 “소라는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는 대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노년에 이 딸을 의지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연민이 느껴졌다. 언제나 강하고 힘센 엄마, 자식의 반항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던 엄마였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 마음의 발자국을 엄마 쪽으로 내딛게 해주고 있었다. 완벽하고 유능한 엄마는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지만 연약한 엄마는 내가 돌보고 사랑해야 할 존재로 느껴진다.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엄마와 더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부모님과 함께,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과거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100프로 만족한 삶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들의 상처를 듣는 특권을 누렸다. 때로는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인해 힘겨운 적도 있었으나, 그 덕분에 나의 마음 그릇이 좀 더 커질 수 있었다.

두 딸을 빼 닮은 두 손녀

    지금 시점에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며 자연을 향유할 줄 안다. 무엇보다도 나는 셋이나 되는 딸을 낳아 키웠다. 이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나의 일부였으나 조금씩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독립된 개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내게서 독립하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때로 나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하지만 그들은 내게서 떠나려 했다. 때로 나는 그들이 귀찮아져서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는 그들이 나를 필요로 했다.

    쌍방의 욕구가 매칭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은 아이들과 나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때로는 거친 말로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묶음의 존재가 아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사람이 되기에 이르렀다.(막내는 아직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각자 자기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걱정해주는, 친구 같은 세 사람.  

    이런 사실만으로도 내 인생 만족도는 백 점이다. 결혼 전부터 삐걱대던 남편과의 관계도 결혼 20주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개선되어 지금은 아주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나의 내담자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깊이 사랑하며 진심을 다해 그들과 대화한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우리 교회 교인들과는 좀 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이들이나 내담자들과는 완전히 대등한 관계를 맺기 어렵지만 교인들과는 그것이 가능하다. 직업이나 지식, 재산과 상관없이 하나같이 낮은 자로서 만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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