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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un 13. 2024

나는 행복한 사람

2010년 1월 23일(토) 일기 2


  

    엄마의 기도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지만 “소라는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는 대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노년에 이 딸을 의지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연민이 느껴졌다. 언제나 강하고 힘센 엄마, 자식의 반항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던 엄마였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 마음의 발자국을 엄마 쪽으로 내딛게 해주고 있었다. 완벽하고 유능한 엄마는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지만 연약한 엄마는 내가 돌보고 사랑해야 할 존재로 느껴진다.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엄마와 더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부모님과 함께,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과거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100프로 만족한 삶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들의 상처를 듣는 특권을 누렸다. 때로는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인해 힘겨운 적도 있었으나, 그 덕분에 나의 마음 그릇이 좀 더 커질 수 있었다.

두 딸을 빼 닮은 두 손녀

    지금 시점에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며 자연을 향유할 줄 안다. 무엇보다도 나는 셋이나 되는 딸을 낳아 키웠다. 이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나의 일부였으나 조금씩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독립된 개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내게서 독립하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때로 나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하지만 그들은 내게서 떠나려 했다. 때로 나는 그들이 귀찮아져서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는 그들이 나를 필요로 했다.

    쌍방의 욕구가 매칭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은 아이들과 나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때로는 거친 말로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묶음의 존재가 아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사람이 되기에 이르렀다.(막내는 아직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각자 자기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걱정해주는, 친구 같은 세 사람.  

    이런 사실만으로도 내 인생 만족도는 백 점이다. 결혼 전부터 삐걱대던 남편과의 관계도 결혼 20주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개선되어 지금은 아주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나의 내담자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깊이 사랑하며 진심을 다해 그들과 대화한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우리 교회 교인들과는 좀 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이들이나 내담자들과는 완전히 대등한 관계를 맺기 어렵지만 교인들과는 그것이 가능하다. 직업이나 지식, 재산과 상관없이 하나같이 낮은 자로서 만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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