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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 입문하다

대전문학관 시조 수업을 듣고나서

by 이소라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래 문학수업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받았을 뿐 체계적인 공부가 부족하여 늘 목마른 상태였다. 올 가을 대전문학관의 시조반에 등록한 것은 시조가 다른 어떤 장르의 글보다 작법상의 규칙이 분명할 것이라 따라 하기가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개강일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선배 문인 두 분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늙어도 글을 늙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는데, 그 말씀으로 인해 두 달 후 국가공인 노인이 될 예정이었던 내게 깃들었던 모종의 슬픔이 가시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 다른 한 분은 “시조를 쓰는 사람은 애국자예요.” 하셨다. 사실 그때는 그 말뜻을 잘 몰랐는데 종강을 앞둔 지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시조는 한국 고유의 문학 장르이므로 우리말의 리듬을 살려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려면 우리말의 특성과 어법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어휘와 문법을 모르고는 시조를 쓰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유명한 시조들을 수업에서 다시 접하면서 이 시조들이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처럼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이방원의 하여가)’ 같은 시조는 3-4-3-4 3-4-3-4 3-5-4-4의 음수율을 정확히 지키면서 드렁칡 비유를 통해 고려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는 내용을 담았다. 설명문이나 논설문 형식으로 사람을 설득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운문으로 자기주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품격 있는 대화인가!

시조의 가치와 품격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시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강사님이 시간마다 강조하신 부분을 유념하면서 언젠가 나의 시조를 쓰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첫 시조를 써보았다.


문학관 가는 길

길고 긴 가뭄 끝에 단비 내린 아침나절

우중 운전 마다 않고 문학관 가는 길

꼬리 문 후미등 행렬 꽃등처럼 예쁘다.


삼장육구 장단 맞춰 몇 수 시조 읊어보니

식었던 핏줄에 다순 피가 도는 듯

굳어진 관절 마디에 매끈매끈 기름 친 듯.


이 시조는 급우들과 강사님의 피드백을 거쳐 완성된 모습이지만 처음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신입생의 부푼 마음이 잘 드러나 있고 서사를 밀고 가는 힘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내가 뒤늦게 배운 것은 종장 첫 구를 3음절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조의 종장은 3-5-4(3)-3(4)의 율격이 기본이지만 2구의 음수는 7음절까지 늘어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종장 2구가 화자의 갈등을 분출하기 위해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학관 가는 길’의 경우 1연의 종장 2구는 ‘후미등 행렬’이고 2연의 종장 2구는 ‘관절 마디에’다. 두 연의 종장을 비교하자면 1연의 종장이 더 잘된 것으로 생각된다. 평소라면 빗속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이 짜증스러웠을 텐데 수업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후미등의 붉은 색이 꽃으로 보일 정도로 고양되어 있었던 나의 마음을 잘 드러낸 것 같다.

후미등행렬.jfif 빗속의 후미등 행렬

두 번째 작품인 ‘작별’은 거의 20년 타던 차를 폐차장에 보낸 후의 감회를 그린 것이고, 세 번째 작품 ‘아버지’는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린 것이다.


작별

이십 년 타던 차를 폐차장에 보냈다.

브레이크 오일이 자꾸만 새는데

단종된 구모델이라 부품이 없단다.


앞다리 치켜들고 끌려가던 그 모습이

사지로 끌려가는 순한 짐승 형상이라

송아지 떼어 보내는 어미 소 맘 알 것 같다.


아버지


사진 속 제복 입은 미소년은 간데없고

뼈만 남은 팔다리를 환자복에 감춘 채

아버진 북어포처럼 하루하루 마르셨다.


월남에서 죽을 고비 마흔에 폐병 치레

모진 세월 이겨내며 가장으로 사셨는데

코로나 모진 돌풍 속 홀로 눈을 감으셨다.


사랑 흠뻑 받고 큰 두 꾸러미 자손들은

아버지 외로운 길 배웅도 못 했는데

부끄런 이름자들만 묘석 가득 새겨졌다.

KakaoTalk_20251121_160610894.jpg 묘석 가득 새겨진 부끄러운 후손의 이름자들

이 두 작품에서는 하고픈 말을 다 담느라 처음에는 3연 시조와 4연 시조로 썼다가 급우들의 날카로운 품평을 받은 후 군더더기를 쳐내고 각각 2연 시조와 3연 시조로 줄였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시조에 하나의 주제가 드러나게 쓰는 것이었다. 급우들은 내가 머뭇거리며 쓴 내용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걷어내라고 조언해주었다. 이미 오랜 시간 시조를 써온 선배들은 작품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았다. 몇 줄을 걷어내어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흐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촌철살인의 효과가 배가된 것 같았다.

시조가 시조다워지기 위해서는 이밖에도 중요한 규칙들이 많다. 그 규칙들은 우리말의 고유한 특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으므로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 규칙들을 요약해 말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시조는 짧고 함축적인 구절을 사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장르였다. 따라서 시조 쓰기는 산문 쓰기에도 퍽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산문에서도 역시 장황함을 걷어내고 꼭 필요한 문장만을 쓰는 것이 미덕이니까 말이다.

우리 시조반 급우들 중에는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신 분과 개인 시조집을 내신 분도 많다. 솔직히 강사님의 가르침도 훌륭하지만 수준 높은 급우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권으로 여겨진다. 만 65세가 되는 해 가을에 시조의 세계에 입문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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