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독후감
37세의 젊은 의사가 죽음의 목전에서 쓴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인 폴 칼라니티가 평생 매달렸던 질문은 ‘인생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인도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는 하지만 기독교인 부모를 가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젊은 나이일 때부터 그토록 삶과 죽음의 의미에 천착한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그가 신경외과 의사가 된 이유는 인간 신체와 정신이 교차하는 장소인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어려서부터 육체보다 정신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인간 육체 가운데 정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뇌를 자신의 연구 분야로 삼았다. 그가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게 되면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을 즐기는 성격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해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아는 사람이어서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여름 방학 아르바이트 방향을 정하는 일에서도 그랬고, 석사학위까지 받으며 즐겁게 공부한 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의학의 길로 선회한 것도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금욕적이고 학구적인 내 연구는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를 쌓고 강화해나가려는 충동과 갈등을 일으키곤 했다. 반성하지 않은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잠시 영국에서 과학의 역사 및 철학을 공부할 때도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하여 견해를 세우려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공부는 의료인이 되기로 한 그의 결정을 더욱 굳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의학 수업을 받으면서 그는 실제로 수많은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신생아들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는 너무 빨리 태어나는 것과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 중 어는 쪽이 더 안 좋은지를 판단하기 위해, 뇌수술 현장에서는 환자 입장에서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더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다.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그는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환자가 누구인지, 또 그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갔다.
어린 매슈가 시상하부 종양 제거 수술 후 시상하부 손상으로 식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 고도 비만에 걸린 모습을 보았을 때도, 생명은 구했으나 뇌손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 환자가 말을 하지도 못하고 음식도 튜브로 섭취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런 상황이 ‘환자의 사망보다 더 지독한 실패’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는 것보다 못한 미래를 맞게 될 환자 앞에서 그는 죽음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죽음의 전령사가 되어감을 느낀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경험을 쌓아가면서 죽음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라고. 이 견해는 자신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주치의인 에마의 태도로부터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사의 책무 중 하나라는 것도 깨닫는다.
1차 치료에서 호전되었던 암이 재발한 것을 알게 된 칼라니티는 죽음을 피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무너져가는 건강 상태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글쓰기를 그가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언어의 힘에 대한 확신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어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했다.
언어를 사랑했고 언어를 잘 구사했던 칼라니티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이 죽음 앞에서 깨달은 지혜와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가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로 글쓰기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의 글을 통해 독자인 우리가 칼라니티 자신은 물론 수많은 환자들,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