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의 진화와 사생활의 발견
수북수북 7번째 모임 후기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모인 오늘의 북클럽은 남성회원 황이 진행을 맡았다. 우리 북클럽은 내가 기획하고 운영책임을 맡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역할과 책임을 공유하고 싶었다. 책의 저자가 진정한 스승이고 진행자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진행하더라도 모임의 퀄리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진행자는 엄청난 양의 리딩 가이드를 제시했다. 거의 한 학기 수업을 할 수 있을 분량이었다. 인생그래프 그리기, 배우자와 함께한 시간 동안 감사할 거리 찾기, 저자가 크리슈나무르티 및 스콧 니어링과 맺은 관계의 차이 분석하기, 헬렌과 스콧의 대화 중 인상 깊었던 부분 나누기, 니어링 부부의 다른 책 읽기, 영화 <더 와이프> 보기, 죽음에 대비하여 실제적인 준비를 하기, 한국 라브리 공동체 방문하기 등이 그것이었다. 물론 이 가이드를 모두 따르라는 것은 아니었고 그중에서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배려심이 많은 그의 성격상 정해진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기보다는 그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고 싶었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가이드는 가이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독서모임에서 리딩 가이드를 사용하는 목적 중 하나는 대화의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회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과제를 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몇몇 회원의 독후감이 진화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그리고 인생그래프 소개하기와 감사거리 찾기 등의 작업에서 회원들의 사생활이 공유되었던 점이다. 지금 시점에서 사생활을 공개하도록 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오늘은 7번째 모임이자 시즌 1의 절반을 지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원들이 공들여 쓴 독후감을 함께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서 다소 아쉬웠다.
나는 진행 책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독후감 읽기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과제를 늦게 낸 사람도 있어서 오늘 아침에야 문서를 취합하고 프린트를 했다. 그런데 도중에 잉크 카트리지가 바닥나 버렸다. 막내가 온라인수업에서 매일 엄청난 자료를 받아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시간을 겨우 한 시간 남겨놓고 잉크를 사러갔지만 정품은 아예 없었다. 잉크충전소로 가니 요즘은 고객들이 정품을 거의 찾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어려운 경기의 반영이다. 그래서 결국 독후감을 다 읽지 못하고 모임에 임했다. 내가 이럴진데 회원들 대부분이 다른 회원들의 독후감을 읽어왔을 것 같지가 않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모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멤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혈을 기울여 썼을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은 모두에게 큰 손실이다.
공동운영자인 염은 과거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서 저자의 채식주의에 감명을 받아 자신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때 모든 제품을 채식 재료로 만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회사를 나온 후 후임자가 채식 라인을 중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쓰라림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그 회사는 그녀가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세웠던 자식 같은 회사였다. 죽음에 대비한 준비와 관련해서 그녀는 30대일 때 미국에서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아이들의 후견인 자격을 조부모가 주정부로부터 넘겨받기 위해 소송을 하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는 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그녀의 치열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독후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다수 노인들은 본인이 가진 자원을 다 소진한 후에도 살아있어서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노년을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부모가 장수할수록 그들을 돌보아야 할 자녀도 나이가 들어 있고, 그러다보니 자녀들 삶의 질도 함께 나빠진다는 지적이었다. 니어링 부부가 농장에서 생활하지 않았더라면 ‘거의 벌이라고 불러야 할 노인 일자리를 얻거나 그보다 더 수입이 적은 연금에 의지하거나, 그도 아니면 항상 궁핍한 생활 가운데 하나는 선택해야 했을 거’라는 스콧 니어링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녀는 현재 노인들이 당면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노인문제와 노인복지정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던 그녀다운 말이었다.
세 번째 모임부터 합류한 두 남성회원이 독후감을 대하는 태도는 날이 갈수록 성실해지고 있다. 지난주에 완벽한 독후감을 써보려 했다가 결국 제출도 못했다고 고백했던 회원은 이번에는 독후감을 일찍 제출했다. 저자의 삶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는 것은, 주기적 단식을 죽음의 연습으로 여기고 실천해보고 싶다는 말이나 저자 부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3가지 습관을 자신의 부부도 실천하고 있다고 썼기 때문이다. 자신은 독후감을 다 읽고 왔으니 이 자리에서 일일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모임을 위한 준비를 많이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다소 장난기 있는 발언을 많이 하는 또 한명의 남성회원은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성적인 독후감을 써냈다. 노년의 초입에 있는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는 농장 일을 하면서 큰 희열을 느끼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입장을 저자가 생생하게 확인시켜 주어서 감사했다고 썼다.
인생그래프 소개하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를 인생의 황금기로 그리고 있는 반면 한 명의 여자회원만이 삶의 만족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와서 오히려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요즘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독서모임이 활력소가 되고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좀처럼 긍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그녀가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것은 큰 사건이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부정적 사고의 사이클이 돌아가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인데도 한 주에 한 권이라는 적지 않은 독서량을 소화해주는 그녀가 대견했다. 또 한명의 여자회원은 부부가 서로 감사한 일을 나누라는 항목에 답하느라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지 물었더니, 당신에게 감사한 일이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이것을 감사해요’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면서 눈물을 보여 가슴이 아팠다. 다른 여성회원의 남편은 한참 생각한 후에 두 가지 대답을 해주었는데 그녀로서는 만족할만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평생의 노고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에 깊이 물들었던 오늘의 모임을 이렇게 평하고 싶다. ‘독후감은 진화하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열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