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또는 불통
화상채팅에서 비디오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
식욕이 가장 강한 사람은 지금 배가 고픈 사람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소통의 욕구는 더 커질 것이다.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읽으며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틴은 불의의 병에 걸려 식물인간 상태에 있다가 7년 만에 의식이 돌아온다. 그러나 여전히 말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깨어난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려졌고, 그 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최신 기술에 입각한 보완대체 의사소통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부속장치로 이루어지는 이 도구는 세상으로 난 문을 열어줌으로써 마틴으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다.
비용의 문제도 있으나 가족의 몰이해와 무관심으로 인해 이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화상채팅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독서모임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9주 동안 자기 모바일의 비디오를 끄고 참여하는 두 명의 회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도 싫거니와 타인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곧 끝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들의 예외적 행동을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6월 말인 종강 때까지 오프라인 모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어서 나는 두 사람에게 비디오 사용을 강력히 촉구했다. 결국 한 사람은 탈퇴를 선택했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은 한 사람은 생각해 보겠다고 한 후 대답이 없다.
탈퇴 의사를 밝힌 회원과 통화하면서 비디오를 끄고 참여할 때의 이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집중이 더 잘 된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교란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진행자 입장에서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고 하니 그랬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나머지 한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신경이 쓰인다. 그녀 역시 앞에서 말한 여성과 동일한 이유로 비디오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까만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모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진행자가 화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정서적 교감을 방해하기는 하나 이성적 수준에서는 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니 진행자가 조금만 양해해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회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용납할 수 있는 일이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편한데 하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표정을 통한 피드백이라는 중요한 의사소통 요소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수를 대상으로 강의할 때도 앞줄에 앉은 몇 사람이 눈을 맞춰주는지 아닌지에 따라 강사의 강의 몰입도가 달라진다.
그 회원이 진행자의 입장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러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진행자에게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임은 지식이 많은 자가 적은 자에게 지식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설사 상품을 파는 곳이라 해도 구매자가 판매자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진행자는 눈을 보지 않고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 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배웠던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재능기부자로서 진행자는 자신의 역할이 회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그들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을 통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인간 의사소통의 70프로는 비언어적 메시지가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여 답답해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나만큼 소통의 욕구가 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 간 또는 다자간 대화에서 사람들은 자기 욕구만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욕구도 존중해야 한다. 욕구가 충돌할 때는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남은 한 사람도 탈퇴하겠다고 할까 봐 걱정된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한 번은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심력이 약한 사람도,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더 용기를 냈다. 모임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모임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특히 타인이 관련된 상황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편리함을 조금 포기하든지 독서토론을 통해 얻는 기쁨을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