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능력

저혈압 쇼크와 회복

by 이소라

미국에서 귀국하여 시설에서 격리 중인 남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빠의 혈압이 자꾸 떨어진다고 걱정하더라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에 왔다가 한 달 만에 돌아갔던 남동생은 협박에 가까운 나의 요청을 받고 일 년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입국자에게 이 주간의 격리가 필수였다. 격리 중인 동생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다고 거기다 전화를 한 것일까. 나한테는 더 이상 상의 같은 거 하지 말아 달라고 통보한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원래 저혈압이 있는 아빠가 오늘 아침엔 최고 혈압이 50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단히 낮은 수치였다. 남편이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위급한 상황이라며 얼른 병원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 수액을 놓아서 혈압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갔다. 처음엔 요양병원으로 갈 것처럼 말하던 엄마는 유료 응급차를 불러야 하고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는 말에 태도가 달라졌다. 돈이 문제였다. 119에 전화하면 공짜로 응급차를 보내주는데 돈 드는 차를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이고, 어차피 당신이 병원에 드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간병인을 쓰기 싫은 것이었다. 그럼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해서 아버지가 위독하니 동생을 조기 퇴소시켜달라고 부탁하자고 했더니, 위독한 노인이 있다고 하면 퇴소시켜주지 않을 것이라며 동생이 답답해서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씀인지...


이제 사흘이면 동생의 격리기간이 끝나는데 지금까지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 닳았던 일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동생은 격리가 시작되고 몇일이 안 되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고 했었다. 그때 엄마는 동생을 집에 와 있으라 하고 당신과 아빠는 군인 휴양시설인 계*스파텔에 가 있겠다고 했다.

치매와 파킨슨으로 식탁까지 걸어가지도 못하고 매일 장례준비를 하라고 보채는 아빠를 모시고 호텔로 가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내가 따라간다고 해도 하룻밤 이상의 숙박은 무리한 일이었다. 그러면 동생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서 간다는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을 딱하게 여긴 내가, 아니면 천안 사는 삼촌이 집으로 모실 것이라고 계산한 것일까. 엄마의 계산이 또 시작되었다. 내게는 엄마가 자기의 답답함을 아들 핑계로 해소하고 싶은 것으로밖에 안보였다. 집 안에 있기보다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하시던 분이 집안에만 갖혀 있으니 바람 쐴 핑계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런 식이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핑계를 만드는 데 선수였다.


답답해서 나가고 싶다는 말로는 동생을 격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요양병원에는 모시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빠를 살려야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살리기 싫다, 저렇게 매일 장례준비하라고 성화하는 사람을 살려서 뭐하겠냐는 것이었다. 저렇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살려봤자 똑같은 일만 반복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엄마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었다. 30분에 한 번씩 혈압을 재보시라고 하고 나는 집에 왔다. 여동생과 상의하여 오늘 중으로 혈압이 올라가지 않으면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로 했다.

내 개인 일정을 끝내고 2시에 전화했더니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는 희색이 만면했다. 아빠를 살리기 싫다는 말이 진심이었을까? 나는 엄마를 믿지 못한다. 엄마 스스로는 자기 말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합리화의 달인인 엄마는 무엇이 진실인지 보다는 돈을 아끼면서도 체면을 세우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이다.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전화해서 상황을 물었다. 나는 아빠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말하며 관심 끌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고 했다. 남편은 말도 안 된다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거나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이면 몰라도 어떻게 자기 혈압까지 통제할 수가 있느냐고 했다. 남편 말이 맞긴 하지만 나는 이제 아빠의 초능력을 믿는다. 아빠는 수면도 조절할 수 있고 혈압도 자유자재로 높이고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심장이 멎었는데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늘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하는 아빠와 엄마, 동생을 대하다 보니 나도 상식을 넘어서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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