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나
아빠가 사망하셔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아빠가 치매요양원에 입소한 지 오늘로 일주일째, 내 머리가 돌아버리기 직전이다. 일요일 아침 아빠가 두 번째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전화를 받고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갔다. 직원들은 병원으로 가야 할 노인을 왜 요양원에 모셨느냐고 원망했다. 나는 두 주 전에 응급차에 실려 가서 뇌 MRI를 찍었지만 이상이 없었다는 말을 해주며 병원에서 안 받아주니 어떡하겠느냐고 했다. 아빠는 분명 다시 깨어나실 것이라 장담하고 깨어나면 드리라고 전복죽을 전해주고 왔다. 예상했던 대로 아빠가 오후에 깨어나서 식사를 잘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자존심 강한 나의 엄마는 그들의 염려를 아빠에 대한 거부의사로 이해하고는 마음이 상했다. 아빠를 집에 모시고 가자고 하기에 집에 모셔가서 어떡할 건데요, 했더니 엄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아빠는 분명히 깨어나실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엄마를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빠는 깨어나셨다.
어제는 요양원에서 별 연락이 없어서 가지 않았다. 오늘은 치과 예약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빠를 모시고 외출을 하게 되어 있었다. 아빠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기 위애 서울에서 치료를 시작했는데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대전으로 이사하신 것이다. 이사 후에는 병원을 바꾸어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일 년 동안 입원을 여덟 번이나 하다 보니 치과 치료가 자꾸 중단되었고, 그 치료가 과연 소용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졌다. 당신 입으로 곧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치과치료는 무척 열심히 하신다. 오늘은 신경치료를 했는데 다음 주에는 발치를 하고 몇 달 후에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치료를 끝내고 집에 가서 좋아하시는 장어국을 드시게 하고 요양원에 복귀시켰다. 입소 일주일째라 남자 생활관 담당 과장이 상담을 하자고 했다.
그는 엄마와 나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아빠가 이곳을 집처럼 생각하시는지 너무나 요구가 많으시다, 그리고 욕구가 안 채워지니 불만이 많으시다, 그래도 자신들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것이 한 가지 당부였다. 두 번째 당부는 좀 더 심각했다. 아빠가 두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지셨는데 어느 날 밤에 또 혼수상태에 들어간 것을 직원들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다가 운명하실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자기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아빠는 조만간 돌아가실 분이 아니라고 말했고, 설령 아빠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때가 되어 돌아가시는 분을 어찌하겠느냐고 했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매일 와서 뵙겠다,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만나고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하도 강하게 말해서 그런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다른 가족들에게도 말하고 동의를 구하라고 했다. 막내 동생은 내 의견에 무조건 찬성이고, 아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의견 제시도 없는 남동생의 의견 따위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직원들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아침에 치과 병원에 가는 길에 엄마가 아빠에게 아침 드셨냐고 물으니 아빠는 안 드셨다고 했다. 엄마는 요양원 사람들이 아빠에게 관심도 없다면서 어떻게 밥도 안 먹여서 내어 보내느냐고 언성을 높이려 했다. 나는 "아빠 말만 듣고 그러지 마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닌 게 아니라 나중에 아빠는 아침밥을 먹었다고 번복하셨다. 아까는 생각이 안 났었다고. 전에도 엄마는 아빠 말을 그대로 다 믿고 병원 사람들을 비난했었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못 믿으면서 어떻게 그곳에 맡기냐고 하면서 제발 그들을 좀 믿자고 울분을 토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시설 직원들이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불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아빠를 맡길 수 있겠는가.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 외출과 외박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런 시설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아빠는 엄마의 편지에 답장을 한 번만 하고 안 하셨다. 엄마가 왜 편지 답장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거짓말을 쓸 수가 없어서 안 썼다고 하셨다. 그 뜻인즉 아빠는 요양원의 비리를 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그들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테니 편지를 쓰려면 좋은 말만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치매 증상의 하나인 의심병이었다. 나에겐 엄마의 불신이나 아빠의 의심이나 매한가지로 보였다.
나는 담당과장과의 대화를 문자 메시지로 간략하게 동생들에게 전했다. 아빠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셔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게 썼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장녀라는 것이 참 매정하다고 할 것이다. 아빠와 엄마가 내 진을 다 빼놓은 것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