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을 옮기는 이유

간병인을 괴롭히는 아빠

by 이소라

아침에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처음으로 한 달 이상 병원에 계시는 중이다. 지금 계시는 병실에는 말 못 하고 누워 있는 환자들만 있으니 상태가 조금 나은 분들이 계시는 방으로 옮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전화였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 병원은 남편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다. 남편이 퇴근하여 원장의 말을 전했다. 사실은 아빠가 간병인을 너무 괴롭혀서 방을 옮겼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간병인이 자기 부하나 되는 양 명령하고, 바로바로 반응해주지 않을 때는 화를 내다 욕을 하다 이제는 위험한 물건으로 위협하기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번 입원은 엄마의 발 통증이 심해져 보행이 어려운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전지역에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는 면회도 불가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아빠를 입원시켰다. 작년에 이어 일 년 만에 남동생이 들어왔는데, 집으로 오는 요양보호사는 미국에서 온 사람에게 감염될까 무서워 출근하지 않았다. 엄마는 두 달 동안 아빠와 동생을 건사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아빠를 입원시키자는 나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금까지는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기간이 최대 3주였다. 이번에는 좀 오래 계시게 할 필요가 있었다. 엄마에게도 휴식이 필요했고 아빠를 병원에 입퇴원 시키는 것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빠를 입원시킨 후 엄마의 관심을 돌려보려고 이모들과 여동생이 엄마를 자기들 집으로 불러 즐겁게 해 드렸다. 일주일 만에 내려온 엄마는 매일 병원에 전화하여 간호사가 알려주는 아빠의 상태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였다. “집에서는 그런대로 식사를 잘하셨는데 영 안 드신다니 어떡하느냐, 배가 아프다는데 어떡하느냐, 내가 전화해도 안 받겠다고 하는데 화가 많이 났나 보다.” 결국 집에 모셔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눈물로 하소연하는 엄마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하였기에 나는 재택 간병인을 집에 데려다 놓기 전에는 아빠를 퇴원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간병인을 쓰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남의 식구와 24시간 같이 있기 힘들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고 다른 한 가지는 돈 문제였다. 적지 않은 아빠의 연금을 모조리 남동생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에 간병인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남동생은 아빠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었다.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병원에 가기를 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망진단서 써 줄 사람 옆에 있어야 아빠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동생이 미국에 돌아가기 직전에 아빠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아빠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분리불안장애가 있었다. 두 분이 평생 껌딱지로 살아오신 건 좋은데 홀로 있는 것이 훈련되지 않아서 이토록 힘들어하시는 것이다. 전에 다른 병원에 입원시켰을 때는 아빠가 병원에서 잘 지내시는데도 엄마는 일주일이 못 되어 아빠를 모시고 나왔다. 공식적으로는 죄책감을 내세웠지만 큰 이유는 본인이 헛헛하여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빠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 좀 해보세요.”라는 말이나 “엄마가 먼저 쓰러지면 어떡해요.”라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한 달 넘게 아빠를 퇴원시키지 않는 것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다.


아빠를 모시고 나오고 싶다는 말은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엄마의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 했다. 당신 혼자 먹자고 밥 하기 싫다는 엄마를 위해 음식을 해다 드리고,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쇼핑 좋아하는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쇼핑센터에 모시고 갔다. 우리 집에 손녀가 와 있을 때는 와서 아기 재롱을 보시도록 했다. 함께 아빠 병원에 가서 간식을 전하고 병원 문 앞에서 아빠와 통화를 하고 오기도 했다.

병원에서 걱정스러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 때는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갔다. 엄마는 마음이 안정되어 가면서 재봉질로 시간을 보내셨다. 지난주에 아빠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는 통에 엄마 마음에는 또 한 번의 격동이 일어났지만, 도와주러 오기로 한 큰 이모가 오지 못하게 되어 일단 보류하고 있었다. 그다음 통화에서 아빠는 “나 때문에 힘들지? 이젠 여기서 지낼 만하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라는 말로 엄마를 안심시켰다. 알고 보니 원장이 아빠를 설득한 것이었다. "아버님이 대장부답게 의연하게 계셔야 가족들이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약발이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다음 날아온 소식이 병실을 옮긴다는 것이었다. 엄마에게는 아빠가 행패 부려서 다른 방으로 보내진 것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 방에서도 얼마나 조용히 계실지 모르지만 일단 급한 불은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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