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우리에겐 처음입니다.
도파민과 복통의 관계
아빠를 요양병원에서 퇴원시킬 때 엄마는 이제 집에서 마지막을 맞게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8월이었고 아빠가 입원한 지 한 달 반 되었을 때였다. 엄마는 재택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아빠를 퇴원시키지 않겠다는 나의 제안(또는 협박)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아프실 때부터 10년 넘게 돌봄 인력을 보내주던 인력센터에서 사람을 소개받았다. 경험도 많고 성격도 무던해 보이는 분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아빠의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아서 자기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거였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24시간 아빠를 돌보는 분이 있다 보니 엄마의 기력이 회복되었고, 엄마는 평소 성격대로 간병인의 행동거지를 참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전등을 켜지 않고 소변을 몇 번 본 후에야 물을 내리는 지나친 검약의 관점에서 엄마는 간병인의 낭비를 지적했다.
그 밖에도 엄마는 좋은 의도로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지시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돌보는 것도 이렇게 하면 아버지가 좋아한다, 저렇게 하면 당신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 하면서 지나친 친절을 베풀었다. 처음에는 "네네." 하고 대답하던 간병인도 같은 일이 계속되니까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런 말씀 그만하라든가 엄마의 생각이 틀렸다며 자기 생각을 내세웠다. 간병인과 엄마의 관계는 점점 살얼음판이 되어갔다.
아빠의 침상을 거실에 마련해놓고 간병인은 그 옆 소파에서 잠을 자게 했는데 어느 날 밤 안방에서 자는 엄마 귀에 간병인이 아빠를 면박 주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간병인에게 아빠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어렵사리 부탁한 후에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아빠의 침상과 소파가 직각으로 놓여 있어서 아빠가 고개를 돌리면 간병인의 발이 바로 보였다. 밤에 잠이 깬 아빠가 눈앞에 있는 간병인의 발을 만지작만지작했는데 간병인이 잠에서 깨어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아빠가 말을 듣지 않자 언성이 높아졌고 그렇게 투닥거리는 소리가 엄마에게 들렸던 것이다.
아빠의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간병인을 엄마로 착각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엄마는 아빠가 완전히 식물인간이 아니고 아직 남자의 본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간병인에게는 기분 나쁘면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했다. 엄마가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간병인 입장에선 계속 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한 달을 채워 그만두었고 엄마는 아빠가 많이 호전되었으니 3시간짜리 요양보호사를 이용하면서 버텨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갔다. 아빠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상태가 호전되어서 낮에는 화장실에도 걸어서 가고 식사도 식탁에서 했다. 가끔 배 아프다고 119를 부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병원에 간들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엄마는 아빠를 달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하면서 상황을 모면했다. 엄마가 아빠 다루는 법을 터득하셨다보다 하면서 안심했다.
12월이 되고 나의 2학기 강의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른 아침에 엄마가 전화했다. 아빠가 배 아프다고 식사를 안 하셔서 119를 불러야겠다는 것이었다. 119를 부르면 응급실에 갈 수 있고 응급실에 가면 다른 절차 없이 검사와 처치를 해주니까 가서 내시경을 찍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위 내시경을 찍은 지 1년이 되었으니 한 번 찍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시경은 응급실에 들어간다고 바로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내과 전문의가 하는 일이므로 의사의 스케줄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입원 준비까지 해놓은 엄마에게 기다려보시라고 하고 누구에게 상의하면 좋을지 고민해보았다.
파킨슨병 치료에 쓰이는 도파민제는 장운동을 저하시키고 인지기능을 떨어뜨린다 신경과 의사인 조카가 생각났다. 이종사촌 언니의 외아들인 조카는 서울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화해서 상황설명을 하니 복용약 처방전을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처방전을 본 조카는 도파민제를 모조리 빼라고 했다. 도파민 성분은 파킨슨 환자의 운동조절 능력을 개선시킬 목적으로 처방하는 것이지만 장운동을 저하시키고 인지와 감정에 영향을 주어 특정한 대상에 집착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파민제를 빼면 운동기능이 저하될 것이지만 어차피 지금은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아빠가 사망진단서와 장례식에 집착하는 것도 도파민의 영향이라고 보면 설명이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조카의 말을 전하고 전화도 바꿔드렸다. 도파민 약을 빼면 배 아픈 것은 좋아질 것이니 며칠 기다려보자고 달랬다. 실제로 장운동도 나아질 것이고 복통에 집착하는 아빠의 신경을 둔하게 할 테니 아픔을 덜 느낄 것이다.
물론 운동기능이 나빠지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도파민제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장운동이 저하되어 변비가 다시 심해질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그다음 단계는 신경안정제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환자를 재우는 것이다. 엄마는 그 말을 듣더니 조카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달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했다. 최후의 선택으로 사용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달라니. 엄마는 아빠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아빠 문제로 상의할 때마다 엄마와 싸우게 되는 것은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훈병원에는 석 달까지 입원할 수 있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아빠를 석 달 입원시킬 계획을 세워두고 엄마는 지금 오는 요양보호사로부터 병원에서 주간 간병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벌써 받아놓았다. 이분은 노은동에 사는 자신이 신탄진에 있는 보훈병원으로 출근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아는 것일까? 엄마는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상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긍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나중에 가서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 탓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좋게 보면 임기응변에 능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뒷일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어쩌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희망적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일단 보훈병원에서 아빠를 입원시켜줄지가 불투명했다. 아빠가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아닐 확률이 99프로이고, 설사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해도 코로나가 창궐한 현 상황에서는 입원이 불가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입원 허락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요양보호사가 신탄진 보훈병원까지 출퇴근하려면 왕복 서너 시간이 걸린다. 6만 원을 받고 그 일을 며칠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야간에는 엄마 본인이 아빠를 간병하겠다고 했다. 돈 아까와서 버스를 타고 가는 엄마가 왕복 세 시간 걸리는 신탄진까지 매일 다니겠다는 뜻이다. 엄마가 쓰고 있는 소설은 개연성이 10프로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일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테지만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모두 처음 당하는 일이다. 노인들의 무지함과 편견, 고집을 뚫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든다. 자식을 믿든지 전문가를 믿든지 둘 중 하나만이라도 믿으면 좋을 텐데 노인들은 자신의 의심과 불안을 믿는다.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부모의 답답함을 보아 내기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