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 묫자리 사건

평생 가장이었던 나의 아버지

by 이소라

3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명절 풍경이 바뀌었다. 어머님 댁에 아침저녁으로 번갈아 오는 가사도우미와 간병인이 연휴 동안 쉬기 때문에 그 며칠 동안만 대전에 있는 두 아들네 가족이 교대로 어머님 댁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손위 아주버님 가족에게 날짜 선택권을 드리고 남는 날에 우리가 가서 잔다. 한꺼번에 몰려왔다가 한꺼번에 가버리면 어머님이 더 허전해하실까 봐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이번 추석 아침엔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했다.

친정 아빠는 치매요양원을 3주 만에 퇴소하고 두 달을 쉬었다가 요양병원 생활 한 달 반, 24시간 재택 간병 서비스 한 달을 차례로 경험한 후 하루 3시간 재가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으며 지내시는 중이었다. 요양병원에서 (아빠의 주장에 따르면)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던 아빠는 집에 와서 잠꼬대를 심하게 하셨다. 그러나 전문 간병인의 일대일 서비스를 받으니 심신이 안정되어서 식사도 잘하게 되었고 다리에 힘도 생겼다.


청력이 떨어지고 입 주변 근육이 강직되어 말씀을 거의 못 하면서도 명절 예배 때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성경에서 시편 말씀을 골라놓으셨다. 시편 133편 1절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은 아빠가 젊었을 때부터 좋아하는 말씀이다.

아빠는 느리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지금은 부모 자식이 따로 살고 형제들도 멀리 떨어져 사는 시대라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형제는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했다. 누가 보아도 치매 환자의 말씀은 아니었다. 일주일 전에 급성 경련으로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온 사람이라고 믿기도 어려웠다.

아빠의 영혼, 즉 그의 가장 깊은 자아가 있는 자리에는 여전히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혈육에 대한 사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예배 후 엄마는 아빠에 대해 최근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빠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머니 묘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아빠에게 물었더니, 엄마도 알고 있는 '동네 우물 사건'이 그 할머니 묫자리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어릴 때 아빠와 한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동네 우물 사건'이란 공용 우물에 이끼가 껴서 그 원인을 찾던 동네 사람들이 아빠의 할머니 묘를 우물 위쪽에 써서 그런 것이라며 묘를 옮기라고 했던 사건이었다. 묘터 살 돈이 없었던 나의 할아버지는 어머니 묘를 자기 집 뒷산 기슭에 썼다고 한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할머니 묘와 우물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1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빠는 할아버지 대신 동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아빠는 동네 어른들을 상대로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무덤 때문에 우물에 이끼가 낀다는 것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대시오!"라고 했다. 동네 어른들은 어린 중학생의 항변을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어른들 앞에서 울분을 토하고 온 아빠는 할아버지와 함께 당신 할머니의 묘를 파서 유해를 화장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는데 할아버지는 뭘 하셨냐고, 집에 어른이 있는데 왜 어린 아들이 어른들을 상대했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너무 착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엄마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막힌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사꾼이었지만 책을 많이 읽으셨기에 밤마다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반전인가 싶었다. 책을 읽고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해줄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가진 할아버지가 힘 있는 사람들의 부당한 처사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니 말이다.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서였을까?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아빠와 남동생의 성격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아빠는 중학생 때부터 용맹한 군인이 될 싹이 보였던 것이고, 남동생은 할아버지를 닮아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자기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안의 대표 노릇을 했던 나의 아버지는 지금은 아들을 대신해서 손자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빠의 직업은 평생 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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