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북수북의 지정 도서는 정승규라는 젊은 약사가 쓴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이었다. 이런 책을 교양 과학서 또는 과학 교양서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독서 모임 회원의 7분의 6이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공자라 과학 지식 수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도서 목록에 집어넣었다.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하려고 질병과 치료 약에 얽힌 에피소드와 역사적 배경을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학 전문 용어가 나오는 부분은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으면 첫 장을 읽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작가들의 집필 의도를 생각하며 읽는데, 자기 전문분야의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일반인과 공유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훌륭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최근 코비드-19의 백신 개발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개발시기를 장담하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이 지시하고 재정을 쏟아부으면 백신이나 치료 약이 금방 나오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평균 15~20년의 기간이 걸리고, 평균 1조 7천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정치가들의 발언은 정치적 발언일 뿐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오늘은 총원 7명 중 참석 인원이 4명이었다. 지난주 작가초청 특강 때 오프라인에서 만났기에 한결 가까워진 느낌인데 오늘 얼굴 못 본 사람이 많으니 서운했다. 그만큼 한 사람이 발언할 기회가 많아져서 좋기도 했다.
약과 관련된 주제이다 보니 회원 자신과 가족의 병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회원들은 생각보다 많은, 다양한 병들을 안고 살고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병인 나의 다발성골수종 병력부터 식도 이완수축 불능증으로 수술했다는 회원,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평생 바른 연고를 쌓으면 자기 키만큼 될 거라고 한 회원, 20년 동안 과민성 대장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회원까지 있고 보니 우리가 소비한 약의 종류와 양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을 지탱해준 것이 음식만이 아니었음을 새삼 느꼈다.
약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한 회원은 주근깨가 많아서 어렸을 때 별명이 깨순이였는데 비타민 C가 주근깨 개선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복용했더니 정말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다른 회원의 남편은 치과에서 마취 주사를 맞고 깨어나기 전에 “야구장에 가야 하는데, 야구장에 가야 하는데” 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 한 것을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께 물어보니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워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았다. 한 회원은 누님이 매형에게 간을 이식해 준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했었는데 많은 연구자와 환자들의 노력과 희생 덕에 의학이 발전한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이 책에 소개된 매독 치료제 ‘606 살바르신’을 지난 시즌의 지정 도서인 「흐르는 편지」에서 읽었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한쪽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실험을 거듭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치료제를 개발한 연구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 약을 가지고 위안부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는 치료를 자행한 군의관이 있었다.’라고 쓰면서 경외감과 먹먹함이 혼재되었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 책에 소개된 탈리도마이드를 다발성골수종의 재발 방지 목적으로 복용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탈리도마이드는 1960년대 초에 입덧 방지제로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약이라고 홍보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임산부가 먹었는데 그들에게서 12,000명의 기형아가 나왔다. 팔다리가 짧은 12,000명의 아기라니! 1960년생인 내가 선진국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기형아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 입덧 방지제에 혈관형성 억제 효과가 있는 것이 판명되어 지금은 골수이식을 할 수 없는 다발성골수증 환자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이 약을 먹었을 때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껴서 나는 복용을 중단했었다. 다행히 10년간 병이 재발하지 않고 있지만, 이 약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 나눈 이야기 중에서 특히 제약회사의 이윤 창출과 도덕성 간의 균형에 관한 토론이 유익했다. 앞에서 말한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판이 허락되었고 그래서 이 약을 개발한 그뤼넨탈 제약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할 수 없었다면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건만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익 창출에 눈이 먼 제약회사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미국에서는 이 약을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기형아 출생이 17건에 그쳤다고 한다. 미국의 이러한 주도면밀함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미국 유수의 병원에 Ethicist(윤리학자)를 고용함으로써 장기기증이나 수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 등에서 인권 유린을 막고 있다고 미국에서 살다 온 한 회원이 이야기해주었다.
약사로서 좋은 약을 개발하고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약학 지식을 역사와 접목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준 작가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지식을 넘보거나 아는 체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을 자기 분야에 묶어 놓으려는 태도는 개인이 통합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깨뜨릴 수 있다. 독서가들도 자신의 독서영역을 넓혀감으로써 전문가들의 글쓰기를 촉진할 수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