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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24. 2020

인생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죽음 앞에 선 인간을 위한 가르침

  수북수북 시즌 2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8주 동안 추석 한 주 쉬고 매주 책 한 권씩을 읽고 토론했다. 진행자는 진행자대로 리딩 가이드를 뽑아서 공유하고, 회원은 회원대로 책을 열심히 읽고 독후감을 써냈다. 요즘 유행하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이라는 신조어처럼 우린 돌독돌독(돌아서면 독서, 돌아서면 독후감)이다. 수요일에 모임을 하고 나서 돌아서면 다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했다.

  이번 책은 지쳐가는 우리에게 휴식 같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늘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이 놓인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도 삶을 살 수 있다’는 책 속 문장은 우리 몸에 들어간 힘을 빼게 도와주었다.      


  이번 주 책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공저한 「인생수업」이었다.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라는 말이 이 책의 경우처럼 들어맞기도 어려울 것이다. 시인이자 명상가인 류시화는 이 책에 자기 영혼과 숨결을 불어넣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과 상실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거치는 5단계의 과정을 밝힌 저명한 정신의학자이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놀라운 통찰력으로 우리에게 삶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라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며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해준다.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어 말해준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라고 조언한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임을 그녀는 가르쳐준다. 겁에 질린 환자들을 쓰다듬어주며 옆에 있어 주었던 청소부 아주머니처럼, 차에 치여 죽어가는 소년을 품에 꼭 안아주던 경찰관처럼,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모든 관계에는 마지막 순간이 있다는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고, 그래서 일상에서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더 큰 배움을 얻는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변화됨으로써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라고 조언한다.


  오늘을 30대 남성 회원이 진행을 맡아주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그는 풀타임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은 물론, 가사일도 척척 해내는 명실상부 남자 주부이다. 그는 회원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질문들을 뽑아주었다.

  그 회원의 진행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이 모험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경험이 있는지,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상처를 준 경험이 있는지, 상대를 변화시키기를 포기하고 내려놓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상실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상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는지 혹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는지, 인생을 마치고 주변 사람들이 나의 묘비명에 어떤 글귀를 기록해주었으면 하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오늘은 각자가 경험한 죽음과 상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꼈던 커다란 슬픔을 ‘천 개의 바람’이라는 시로 대신한 회원이 있었다. 그녀는 ‘죽음은 삶의 끝이지 관계의 끝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을 실감하며 지금도 마음속 아버지를 느끼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어떤 회원의 시어머님은 당신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상황을 지켜본 이 회원은 가슴이 몹시 아팠다고 했다. 친정아버지가 최근에 암으로 돌아가신 한 회원은 아직도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렵고 남아있는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자서전 쓰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연민과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회원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런 현상을 생존자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친구의 죽음이 생각났다. 나를 사랑했고 나에게 많이 의존했던 그 친구는 이국땅에서 심장바미로 생을 마감했다. 친구가 죽은 지 2년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고 슬픔과 자책감에 오래 시달렸었다. 진행자에서 회원의 입장으로 내려와 책을 반쯤 읽고 독후감을 후딱 써냈는데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었다. 그 감정의 정체가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서 온 것일까?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나눌 때는 모두들 신이 났는데 한 회원만 가슴 뛰는 일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가슴 한켠이 죽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묘비명에 대해서 진행자는 ‘따뜻한 사람, 사랑 많은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싶다고 했고, 나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간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을 쓸 당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신세였지만 아직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다는 것과 혼자 목욕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들고 있던 상자를 열어 호랑나비가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비밀을 가르쳐주려 했던 참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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