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Aug 19. 2020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북수북 시즌 2 첫모임 후기

  수북수북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최장 최악의 장마도, 불볕더위도, 서울발 코로나 집단 발병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존 회원 중 네 명이 남고 새 회원이 세 명 들어와서 총원 7명이 되었다. 첫 번째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오늘 독서 모임을 하면서 경험한 것과 나의 개인적인 독후감을 써 본다.      


  회원들의 독후감을 읽어보니 이 책을 처음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읽을수록 책 내용이 더 깊어지고 더 어려워진다는 고백 일색이었다. 대부분 회원이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된다고 썼다. 이야기에서 화자가 ‘어른들은 겉모습만 중시하고 숫자만 좋아한다.’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를 읽은 어른들이 마음으로 보는 법을 알아간다고 고백한 것은 아이러니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처럼 메마른 어른들의 영혼에 우물물을 부어주기 위해’(한 회원의 표현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조종사의 마음은 녹슬어버린 엔진’과 같아서 어디도 갈 수 없었지만 맑은 샘과 같은 어린 왕자의 영혼을 만나면서 마음의 녹까지 깨끗이 벗어졌다.      


  마음으로 보는 것과 관련하여 회원들을 감동하게 한 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의 의미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아름다운 꽃은 허영심 많은 트집쟁이였지만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존재였기 때문에 어린 왕자는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꽃에게로 간다. 꽃의 가시는 상처가 증오로 대치된 것이다. 꽃 역시도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키운 것이리라. 꽃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인 어린 왕자는 꽃의 까탈스러움을 용납하고, 그를 길들이고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꽃을 길들이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꽃의 말을 듣기보다 향기를 맡아야 한다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주는 말을 한다고 외면하기보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읽어야 한다. 우리 역시도 다른 사람을 찌르는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이유로 우리를 용납해주고 있지 않은가. 어린 왕자의 말로 인해 우리도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나눈 토론 주제 중에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떠난 이유와 1년 후 다시 돌아간 이유, 그리고 그 1년 사이에 어린 왕자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회원들은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온 이유를 각자 다르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문 내용을 통해 의견을 모아보니 결국 어린 왕자는 꽃이 한 말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불행해졌던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간 이유는 여우를 통해 사랑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웠기 때문이었다. 즉, 사랑이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를 알아보는 것이며, 사랑의 방법은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는 것을.

  어린 왕자의 변화는 성장과 성숙이었다. 어린 왕자가 성숙했기 때문에 뱀에게 물리는 고통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이에게로 가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조종사 역시 어린 왕자를 통해 사랑을 배웠다. 한 회원은 조종사가 비행기를 고친 날 어린 왕자가 떠난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어린 왕자가 배움을 마친 날 조종사도 길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필연이라는 것이었다. 조종사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사막에 온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을 찾는 존재와 함께함으로써 그 자신도 사랑을 배웠다. 어린 왕자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해 슬퍼진 조종사에게 어린 왕자는 오억 개의 웃고 있는 별을 선물한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이 어디 있는지 찾다 보면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므로 조종사는 어떤 별을 보더라도 행복할 것이었다. 누군가가 진정한 사랑을 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별에서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는 왕, 허영꾼, 사업가, 지리학자의 모습 속에 나 자신의 모습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말로 상처받기 잘하는 사람인데 책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상처받을 일이 없다. 독서는 매우 지적이고 생산적인 일이므로 책 속에 빠져있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책이 주는 안전감이 클수록 나만의 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