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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y 13. 2020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버드대학교 종단연구에서 얻은 노년의 지혜

  화상 북클럽 수북수북의 9번째 책은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원제는 ‘Well Aging’)>이었다. 이 책은 1920년대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하버드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종단연구를 1972년에 베일런트가 계승하여 2002년까지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을 가지고 쓴 보고서이다.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다른 연구의 대상들도 포함시켜 ‘행복한 노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했다.   

  그는 에릭 에릭슨과 안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초로 사회적 성숙과 정서적 성숙을 성공적인 노년의 증거로 보았다. 사회적 성숙이란 정체성, 생산성, 의미의 수호자, 통합의 과업을 달성해나가는 것을 말하고, 정서적 성숙이란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성숙한 방어기제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저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노인이란, 의미의 수호자 역할을 할 정도로 성숙하고, 이타적 삶을 살면서 유머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다. 노년에 이러한 특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예측 요인은 유전도 환경도 아닌 50세 이전에 형성한 좋은 습관과 건강한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오늘 모임도 챕터별로 요약 발표한 후 책에 소개된 개념과 사실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였고 후반부에는 발제에 따른 토론으로 진행했다. 한 회원의 사정에 맞추느라 한 시간 당겨진 오늘의 모임을 위해 채팅방 개설자인 염과 진행자인 나는 눈썹이 휘날리게 뛰었다.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한 회원과 아버님 간병하느라 참관만 하겠다고 한 또 다른 회원의 요약 과제를 다른 사람들이 쪼개어 맡은 일, 과제를 늦게 제출한 사람 때문에 인쇄를 한 번에 하지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한 일, 원인불명의 잡음이 발생해 대화에 방해가 되었던 일, 갑자기 염의 오디오가 꺼짐으로써 마무리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일등 오늘도 해프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과 열성적인 학습자들 덕에 오늘 모임도 수확이 많았다. 나의 전공분야였기 때문에 내용 이해와 관련해 회원들이 질문한 것이 대답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성인발달 또는 행복한 노년이라는 주제가 모두의 관심사와 합치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지루해하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에도 회원들에게 발제를 해보도록 했는데 여전히 발제의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이야기해볼 만한 좋은 질문이 많이 나왔다.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성공적인 노화를 뭐라고 정의하고 싶은지, 성공적인 노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싶은지, 자신의 자녀나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인간관계가 성공적 노화에 정말로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들이었다.  

  회원들의 답변도 훌륭했다. 자신은 여전히 미성숙한 방어기제인 투사와 수동 공격을 하고 있다고 고백한 회원 덕문에 모두가 공감의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성공적인 노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서는 쓰임새 있게 나이 드는 것(이타주의),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것, 건강을 잘 관리하며 일하고 배우고 봉사하는 것, 늙어감이 주는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질문에서도 감동적인 답변이 많이 나왔다. 나는 학교 공부가 인생 또는 인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딸들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공부만 잘했던 큰딸보다 공부도 못했던 둘째 딸이 성인기 삶을 훨씬 더 재미있게 사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었다. 큰아들에게서는 자기 배우자 사랑하는 법을, 둘째 아들에게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운다고 한 회원이 있었고 아들에게 인생 즐기는 법을 배운다는 회원도 있었다. 염은 큰아들이 아직 어리지만 조부모님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배려를 배우고, 둘째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쟁취하되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점이 많다고 했다.

  한 회원은 딸이 친구이자 상담자로 자신에게 좋은 책을 권해주고 문제점도 지적해주어서 많이 배운다고 하였다. 또 다른 회원은 아들에게서 나쁜 감정을 오래 담아두지 않는 점을 배운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회원들은 생산성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나온 이야기 중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힘든 작업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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