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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pr 23. 2020

사실에 충실하기

고정 관념에 도전하는 팩트의 힘 

  팩트풀니스(저자가 만든 신조어로, 사실충실성이라고 번역됨)는 지금까지 우리가 읽었던 책들과는 성격이 다른 사회과학도서였다. 이 책의 요지는 사실에 충실하지 않은 사고가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게 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사람들이 사실에 충실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10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가 말하는 팩트란 통계적 데이터다. 의사이자 통계학자로서 그는 나라들을 소득수준에 따라 4개의 단계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세계 인구의 85%가 극빈국이었던 200년 전과 달리 현재는 10%만이 극빈국이다. 이런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소득수준이 테러로부터 성교육에 이르기까지 세계인의 온갖 행동을 이해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변수의 상관관계를 구하는 단순한 수학적 계산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소득수준은 수명과 비례하고 아동사망률과는 반비례한다. 소득수준은 교육수준 및 건강과 비례하며 연간 이동거리와도 비례한다. 소득수준은 또 폭력발생률과 반비례한다. 이러한 사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으려면 국민기본소득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지만 여전히 극빈상태에서 살아가는 10억 인구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실에 근거한 우선순위로 볼 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역설한다.      

사실충실성을 저해하는 10가지 장애물

  오늘 독서모임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10가지 장애물의 개념을 회원들이 한 가지씩 돌아가며 설명하고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토론했다. 저자는 본능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개념은 아니지만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타당한 개념이라고 생각되었다. 간극본능, 부정본능, 직선본능, 공포본능, 크기본능, 일반화본능, 운명본능, 단일관점본능, 비난본능, 다급함 본능이 그것이다.


  회원들이 각자 맡은 챕터에서 한 개 이상의 질문을 만들어보도록 하는 과제도 주었다. 모티머 애들러는 <How to read a book>에서 능동적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질문하며 읽으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나는 질문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토론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마지못해 질문을 만들었다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묻는 질문, 본능적 사고를 했던 경험을 묻는 질문, 자기성찰을 위한 질문, 정책수립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 등이 나왔다. 우리는 이 질문들에 답하면서 토론했다. 본인들이 발표한 내용이고 또 본인들이 제기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참여와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1인당 기타보유수가 사회발전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본 저자의 생각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 질문을 한 사람은 이것이 과연 타당한 지표인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저자의 말대로 문화와 자유를 사회발전의 궁극목표로 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기타보유수가 문화와 자유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체로 회의적인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악기를 구입한다는 것을 단지 경제적 능력의 표현으로 본다면 그것을 문화발전의 지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주에 대한 걱정을 벗어난 후에야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법이고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된 후에야 악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법이니 기타 보유수는 분명 사회의 문화발전의 바로미터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소득은 문화수준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이 가진 돈으로 무엇을 사는가 하는 데 있다. 절대 그렇게 볼 수 없다고 주장한 한 회원은 1인당 물감과 캔버스 보유량은 사회발전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우리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10가지 본능의 개념이 참신한 것이었고 거시적 관점을 요하는 내용들이 다루어져서 할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2시간 안에 모임을 끝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어 썼다. 다른 때와 달리 모래시계와 초시계가 사용되었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을 때는 남은 시간을 알리며 경고했다. 공동운영자인 염은 자기 책상에 놓은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초조함을 배가시켰다고 했다. 나는 진행하면서 발언 시간을 체크하느라 초긴장했다. 모두들 3분 안에 핵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한 시간에 끝내는 것이 대단한 미덕은 아니다. 그러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고 길어지는 것은 대인관계를 해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 또한 사실에 충실한 실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정확히 4시에 모임을 끝내니 만족감이 밀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몰입했던 시간이었다. 회원들 역시 그랬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우리 독서모임이 본 궤도에 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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