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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12. 2020

생애 최초의 집단 화상채팅

동네 북클럽을 런칭하다

  한 주에 한 권 읽는 독서모임을 생각한 것은 전주의 어느 독서동아리 이야기를 듣고 난 후였다. 나를 비롯해서 그 정도의 독서량을 감당 동지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저질러보기로 했다. 금년은 내가 환갑을 맞이하는 해가 아니던가!


  우리 동네에서 회원을 모집하기로 하고 야심차게 포스터를 제작하여 동네 도서관 게시판에 부착하러 간 날 도서관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는 수 없이 책 좀 읽는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6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호흡기 감염병 정도야 한 두 주 후면 끝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대구에서 날마다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더니 급기야 초중고의 휴업령이 내려졌다. 독서모임의 공개 오리엔테이션을 하기로 한 날은 가까워져가는데 장소로 사용하기로 했던 커뮤니티센터도 폐쇄한다고 했다. 그래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다릴수록 환자 수는 늘어만 가고 우리 동네에서까지 확진자가 발생했다. 검은 구름이 끼기 시작했지만 나에겐 우산이 있었다.

  공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SNS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도서목록을 공지한 후 회원들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도록 했다. 두 번째 모임은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그때 한 회원이 화상채팅을 제안했다. 영상통화도 어색해서 기피하는 나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문제는 사용법 익히기였다. 나는 그 회원에게 일대일로 사용법을 배웠으나 평균 나이 50세인 회원들이 이 도구 사용을 환영할 것인가? 모바일 앱이란 것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도구임을 감안할 때 사실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은 저항감 그 자체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회원과 내가 한 명씩 붙잡고 사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화상채팅이 부담스럽다며 그냥 SNS로 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결국 다들 동의해주었다. 생각보다 사용법도 빨리들 배웠다. 아이들과 남편들의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드디어 가장 어려운 난관을 통과했다!

  본격적인 독서모임을 하기 전날 회의실 입장 연습을 했다. 모임 당일에 한 명이라도 입장하는 데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명이 약속시간을 놓쳐 5명만 입장에 성공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날 하루 즐거웠던 일을 한 가지 씩 나누고 끝냈다. 두 명 때문에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입장 연습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첫 모임을 위해 많이 준비하고 그 만큼 많이 긴장했다. 첫 모임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경의 특성상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모임을 할 때마다 우수회원을 선발하여 음료이용권을 준다고 미리 공지했다. 독후감을 미리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3명이 전날 보내주었고 모임 직전에 또 한 명이 보내왔다.

  독후감을 읽으며 모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자기 글을 읽은 사람은 무척 부끄러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기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셈이었으니까. 그러나 용감한 그 회원 덕에 다른 사람들도 문제없이 자기 독후감을 읽었다. 나는 그들이 쓴 독후감 내용 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언급했고 피드백과 질문을 했다. 독후감을 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간단한 소감을 직접 말하도록 했다.

  첫 모임의 책은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였다. 쉽고 재미있게 써진 책이라 누구나 적용점을 찾을 수 있는 자전적 자기계발서였다. 작가와 자신이 동일시되는 측면을 나누면서 회원들 각자의 이력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생각에 대한 찬반 토론을 하면서 각자가 가진 기본 지식과 사고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각자가 책을 읽는 이유를 질문했고 그와 관련하여 모티머 J. 애들러가 말한 독서의 목적 3가지를 소개했다. 마무리단계에서는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누었고 씨앗문장 하나씩을 골라 예쁜 카드로 만들어 SNS에 올리도록 했다. 모임에 대한 소감을 나누도록 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시각을 접해서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지극히 개인적 행위인 독서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는 회원이 있었다. 과거에는 책읽기를 좋아했었는데 삶의 의무들에 밀려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런 기회에 독서를 다시 시작하게 되니 이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회원도 있었다. 특히 오늘의 책을 만난 것은 자신에게 필연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운영자로서 뿌듯한 순간이었다.


  다음 주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나는 회원들에게 이 소설의 등장인물 한 명씩을 매칭시켜 주었다. 다음 주에는 본인이 그 등장인물이 되어 우리들에게 그 인물을 소개하고 그 인물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나머지 사람들의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한 활동만으로도 두 시간이 꽉 찰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독서하며 생각해보라고 발제문도 몇 개 나누어주었다. 모임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고 성취감이 밀려왔다. 나는 기어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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