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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pr 28. 2020

헬렌 니어링과 조안 캐슬먼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더 와이프'에 나타난 부부의 세계

  이번 주 독서모임은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모인다. 회원 중 한 사람이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그가 제시한 리딩 가이드 중에 ‘더 와이프’ 영화를 감상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주인공인 조안과 책의 저자인 헬렌의 결혼생활을 비교하게 되었다.      


  내가 헬렌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 때문이다. 그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채식주의자에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또한 그녀는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에 세계의 영적 교사로 지명된 크리슈나무르티와도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낭만적인 사랑의 대상이자 영적 동반자였던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6년 동안 뜨겁게 사랑했다. 크리슈나가 세계교사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그녀는 대등한 동반자가 아닌 수행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처지가 되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져 갔고 영영 이별하게 된다. 


  그 후 헬렌은 스콧 니어링을 만나고 그의 인격과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처럼 영혼이 통하는 두 사람이 나머지 인생길을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상과 행동 때문에 당대 사람들에게 배척당했던 스콧은 헬렌에게는 최고의 개인교사가 되어주었다. 그는 이미 준비된 그녀의 정신세계를 자신의 지식과 사랑으로 채워주고 그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녀 역시 정신적 거인이 되어있음을 알게 해 준다. 두 사람의 나이는 20년이나 차이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차이가 두 사람이 자연스레 교사와 학생으로 만남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헬렌은 자기가 찾던 인생의 스승을 만났고 강단을 빼앗긴 스콧은 천직이었던 교사로서의 열정을 한 사람의 제자에게 온전히 쏟아 부었다. 

  두 사람 모두 대단한 독서가였고 헬렌은 바이올린 연주자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스콧은 가르침의 기술 뿐 아니라 목수와 농부로서의 자질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집을 짓고, 농토를 경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노동만 했고 하루의 일부는 꼭 문화생활에 할애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조화로운 삶(스콧과 헬렌이 good life로 쓴 것을 역자는 조화로운 삶이라고 번역했다)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메이플시럽을 제조하여 수입원으로 삼기도 하면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이루어졌다. 연장자에 학식이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던 스콧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헬렌을 지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헬렌도 자신만큼 성장하도록 도왔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는 헬렌 뿐 아니라 이웃사람들에게도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이토록 겸손한 두 영혼의 결합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조안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대학생이었고 조셉 캐슬먼은 그의 지도교수였다. 결혼한 몸이었음에도 일상의 지루함을 여자들 유혹하는 것으로 벌충했던 그에게 조안은 한 명의 욕구충족 대상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조셉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조안의 재능은 피어나기도 전에 좌절되었고 일찌감치 작가의 꿈을 접은 그녀는 이혼한 조셉의 두 번째 아내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던 중 조셉은 작품을 쓰는 족족 퇴짜를 맞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조안의 의견을 구하던 조셉은 결국 그녀의 생생한 화법을 빌어 글을 수정했고 그 글은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 후 조셉의 이름으로 조안이 글을 쓰게 되고 조셉은 글쓰기 대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보모들과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조안은 그것을 글의 소재로 삼았을 뿐 싸움도 이혼도 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을 감사했을 것이리라. 남편의 이름이 달린 그녀의 글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결국 조셉은 노벨문학상 수장자로 선정되고 부부는 한 마음으로 그것을 기뻐한다. 그런데 노벨상을 받으러 가서 묵고 있던 스톡홀름의 호텔에서도 조셉은 오입질을 시도한다. 급기야 조안은 남편이 수상소감에서 자기에게 공을 돌리는 대목에서 폭발해버린다. 자기에게 공을 돌리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할 당사자는 자신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조셉의 전기를 쓰기 위해 끈질기게 따라붙는 작가에게는 진실을 감춘다. 남편이 자기 이름을 도용하게 한 데는 본인의 책임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공범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안이 스콧과 같은 교수를 만났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스콧이라면 아내의 재능을 시샘하거나 훔치기는커녕 그녀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도록 격려하고 세간의 편견에 맞서 나갈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스콧은 헬렌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조셉은 열등감 때문에 아내의 성공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변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을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이용한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고 아내의 재능을 도용하고 착취한 그 행위가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여성의 인생을 비교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새로운 통찰을 얻게 해주었다. 역시 좋은 질문은 좋은 생각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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