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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26. 2021

젊은 현자의 충고

권인아의 '내가 딛고 설 땅, 대전' 북리뷰

권인아는 누구인가

  서른한 살 권인아는 작가, 크리에이터, 영화감독, 정치인 그 어느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복합인격체다. 적당히 친한 지인의 딸이었던 그녀 사진을 지방선거 홍보전단에서 발견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조용한 부모들의 말 없는 딸이었던 그녀의 삶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선거 후 그녀가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책을 냈다고 했다. 제목만 봐서는 정치인의 홍보용 저서인 것처럼 들렸으나 읽어보니 특정한 장르에 속하는 글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문명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치는 소리라는 느낌이다. 갈피마다 그녀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책의 초반부에서 자신의 사적인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진술하면서 그녀는 독자를 존중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서 오류를 걸러내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책이 나온 후에는 저자의 손을 떠난다’는 세간의 담론에 배치되는 신선한 관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책임지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 그녀의 화두는 책임, 진실, 그리고 자유다.  


  그녀의 표현 방법은 진솔하다 못해 위악적이기까지 한데, 특히 자신을 묘사하는 부분이 그랬다. 자기변호와는 거리가 먼, 자기 고발에 가까운 글이었다. 스스로의 말처럼 “존경받고 싶어서”거나, “특정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쓴 글”은 분명 아니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가공하지 않은 날것으로 내보이는 이유는 “보기에는 좀 괴로워도, 날것이 존재해야 이 세상의 고착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소 거슬릴 지도 모르겠다. 자살을 옹호하는 듯한 이야기는 특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자살옹호는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 말이다. 진보 정당에서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난 후 느낀 것일 터이다. 자신도 죽을 만큼 아팠던 적이 있다고 쓴 것을 보면 고통과 자살에 대한 의견에 관한 한 전적으로 관찰자 시점은 아니다.        


권인아와 그녀의 부모, 그리고 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는 입장이었다. 언젠가 그녀 어머니가 그녀의 이름을 거론할 때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책을 읽고 보니 존경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제대로 안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녀는, 찾아가 배움을 얻고 싶은 현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녀의 비범한 생각들을 직접 듣고 싶어서 그녀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생각은 90년대 출생자들의 일반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자세는 오히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온 몸을 던져 기성세대의 부조리에 맞서고 시대의 아픔을 껴안고자 한다. 10대 초반부터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았던 그녀가 20년 만에 세상으로 나와 정치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책 내용에 의하면 그 긴 시간동안 그녀는 가족들과만 접촉했고 거의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작가의 아버지는 대학 교수로 조용하지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다독가이자 책 수집가인 아버지의 책을 그녀가 다 읽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사상은 성숙하다. 그녀 어머니는 공식적인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이라는 말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색깔이 분명한 여성이다. 작가는 “난 여전히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을 좋아하고 그것은 정직하고 금욕적으로 사는 것의 정반대이므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양쪽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사회적 기업 모두의책에서 출판한 권인아의 저서 표지

권인아가 꿈꾸는 사회

  그녀가 상상하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 그녀가 희구하는 사회는 모든 관계가 개인적인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공동체이다. 서로 간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끼리는 결코 범죄가 일어날 수 없고, 설사 누군가 잘못을 해도 인도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씨족사회로 돌아가야 할 터이므로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을 단위로는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회가 관계성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정치인은 시민들의 대리인으로서 존경받아야 한다고 그녀는 쓰고 있다.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르지만 그녀의 생각을 계속 따라가 보았다.

  그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인을 비난할 때 폭력적이 되는 것을 비판하는데 이 비판은 매우 합리적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언행을 무책임하게 퍼붓는다.”라는 표현은 정확한 지적이다. “한 정치인의 행실이 화두가 될 때, 한 인간의 복잡성을 이해해주려 하기보다는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우리가 “이기고 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나는 이 젊은이의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의 과거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의 생각과 정치적 행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인간적으로 부족한 면이 보도되면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가 정치인으로 부적격하다고 재단해버렸기 때문이다.


권인아의 원칙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 ‘이외의’ 행위들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을 때 시민들이 가져주길 바라는 그녀의 원칙은 “정치인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에만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 외의 이해관계는 나와 그 정치인 사이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외의 것들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또 “비난하는 사람은 무엇을 비난하는지, 비난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며, 무슨 권리로 비난하는지”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비난은 “도를 지나친 공격이며 근거 없는 비난”이다. 그런 행위는 “공익에 반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사회의 공동체성과 믿음을 깨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등은 지키더라도 인간 사이의 우애를 지키지 못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한다. 정치인을 포함한 공인들을 비난하는 출처불명의 가십성 기사를 인터넷에서 발견할 때 내가 느꼈던 혐오감을 그녀도 정확히 똑같이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피하고 보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그녀는 그 혐오감이 무엇에서 오는지를 분석했다. 그런 행위가 비난의 대상을 해치는 것만큼이나 비난자 자신을 해치고 그 비난을 듣는 사람의 인격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가.   

  

  그녀의 말을 모두 인용하고 싶지만 지면이 협소하기도 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독자들은 그녀의 책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녀의 원칙 몇 가지를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람들의 의지가 존중되는 방식은 설득, 토론, 소통이어야지 일방적 비난과 다른 이들을 같이 비난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성이어서는 안 된다.”, “비난하는 이들은 자신이 그 비난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그런 것이 깨끗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아야 한다.”, “비난을 통해 이득이 생기는 자의 말은 공공성을 해치는 것이므로 시민들이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비난에 진정성이 있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목적이 있다면 인정해 줄 수 있다.”, “애초에 정치인이 큰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만,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사람도 일단 사람으로 인정받을 필요는 있다. 아무리 공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사적) 행위를 모욕하고 짓밟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인권을 해치는 행위다.”    

  결론적으로 그녀가 바라는 사회는 “우리보다 약한 사람에게 도움을 나눠주고 우리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책의 다른 장의 내용도 흥미롭고 설득력 있다. ‘모든 문제는 직접 해결하자’, ‘시스템을 뚫고 나가는 방법’, ‘우리는 꼭 편 가르기를 해야만 하는가’, ‘제3의 길을 만들자’ ‘모든 정보는 사실이 아닌 관점이다’, ‘모든 것은 고의적이다’, ‘모두가 동시에 작아지자’, ‘노예가 되려면 차라리 서로의 노예가 되자’, ‘완벽보다는 중용을’ 그리고 마침내 ‘책마저 벗어나야 한다’까지. 모순과 가식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 신물 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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