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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09. 2021

나의 도움이 오는 곳

독후감

  코로나 때문에 마을 공동체 에이치커뮤니티가 일 년을 쉬었다. 커뮤니티 대표가 새봄을 맞아 심기일전하는 의미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관련 도서를 고르다가 특별한 책 한 권을 찾았다. 제목은 「나의 도움이 오는 곳」이고 부제는 ‘우리 동네 진짜 이웃 찾기 프로젝트’다.      

  부유층이 모여 사는 뉴욕 교외 주택단지에서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동네 주민인 피터 로벤하임은 살인사건 자체에도 놀라지만 그 사건 후에도 주민들의 삶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저널리스트인 그는 ‘이웃이란 무엇인가, 마을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이웃 사람들과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의 취재는 이웃의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이루어진다. 의사나 기업의 CEO 등 전문직업인이 많은 이 마을 사람들이 사생활을 극히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허락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총 16가구 중 6가구와 외부인 3명을 취재한다.

  은퇴한 81세 의사, 살해당한 여자의 어머니, 40년째 매일 이 마을에 산책하러 오는 90세 여인, 직업적 삶의 정상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부부, 부동산 중개인 가족, 암에 걸린 여의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취재한다. 그 후 어느 날은 신문배달원과 함께 신문 배달을 하고 우편배달원을 따라 다니며 취재한다.

  저자의 취재 내용은 취재대상의 일상과 취재대상이 이웃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웃의 일상 관찰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자신과 이웃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아침과 저녁이 어떨지에 대한 저자의 궁금증을 만족시켜 주었다. 인터뷰를 한 후 그 집의 어느 창에 불이 켜져 있는지를 보면 집 주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함께 산다는 따뜻한 느낌도 갖게 되었다. 단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웃의 일상을 알고자 하는 것은 거의 범죄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사람으로 인한 위험이 커질수록 사람을 통해 안전망을 형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가 취재를 시작한 이유는 이웃이 위험에 처했을 때 물리적으로 가까이 사는 사람이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혹자는 가능성이 희박한 위험에 대비해서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니 경비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할 것이다.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은 욕구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현대인의 두 가지 중요한 심리적 욕구다. 삶에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생활과 자족의 욕구를 충족할 필요가 커진다. 그래서 사생활을 중시하는 삶을 충실히 살았더니 고립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살인사건이 난 후 저자는 자신이 길 건너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혹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피살된 여성은 남편의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피신하고 싶어서 전화를 여러 차례 했지만 당시 친구는 여행 중이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 저자는 죽은 여자가 한두 명의 이웃과 소통하며 지냈더라도 이런 불행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인터뷰를 한 후 10년이 흐르면서 취재 대상 중 3명이 사망했고 한 가정이 이혼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암에 걸려서 죽었고 또 한 사람은 노환으로 별세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암환자 여성과 노의사를 연결해주었다. 노의사는 암에 걸린 여성이 운전하지 못하게 되자 차를 태워주고 쇼핑에 동행했다. 아픈 사람에게는 가족과 지인이 있었지만 아주 간단한 일을 도와주기 위해 가족과 지인이 이 마을까지 건너오는 것보다는 이웃에 사는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 더 나았다. 무엇보다도 노의사는 자기가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겼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라는 말로 그는 아픈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에이치커뮤니티는 마을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 단체이다. 마을 공동체 형성을 다른 말로 하면 이웃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동안 우리는 마을신문 만들기,  청소년을 위한 메이커 강좌, 보드게임 페스티벌, 벽화 그리기, 독서 동아리 결성 등의 활동을 해왔다. 코로나 기간 동안 독서 동아리는 화상채팅 도구를 사용하여 진행했지만 ‘실버 보드게임 교실’, ‘메이커 랩’ 등의 대면을 요하는 활동의 운영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니 긴 잠에서 깨어나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웃 만들기 활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는 과정에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마을은 책에 소개된 마을과 성격이 다른 아파트촌이지만 이웃끼리 소통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동일하다. 수백 가구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웃과 알고 지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사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3년 전 막내딸의 동네 친구 3명을 초대해서 중학생 독서클럽을 운영했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소식을 나누고 지낸다. 어머니 네 명 중 두 명은 직업이 있어서 일부러 약속을 잡아 만나기는 어렵지만 아이들 일로 상의할 필요가 있을 때 전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한 어머니에게서는 큰 딸들의 진로를 계획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배우는 것이 많고, 한 어머니에게는 가끔 농산물 따위를 선물 받는다. 한 어머니는 자기 전공을 살려 아이들의 국사 시험 준비를 도와주셨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세 이웃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대학이 담장을 헐고 그자리에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다가 우편물을 부칠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우편 배달국은 국립대학 정문 앞에 있는데, 우리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우편물을 부치고 걸음을 옮기다가 전에 학교 담장이 있던 자리에 길다란 공터가 생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공터에는 예쁜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대학이 주민과의 벽을 허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과의 소통을 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했다. 지나가던 학생들과 주민들이 이곳에 잠시 앉아서 차를 마시고, 가끔은 대화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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