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매력에 빠지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by 이소라

5월에 백범을 읽을 때 나는 그의 용맹함에 압도되었었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한 기개가 생겨 평소라면 훨씬 조심했을 상황에서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이번에 허클베리 핀을 읽으면서는 그의 모험심과 장난기에 전염되었다.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의 기상천외한 장난에 동화되어 웃다 보니 장난기가 충전되어 회원들의 별명이 막 떠올랐다.

까만 머리 앤, 안드리 헵번, 일철남, 맹꽁 여사, 인비저버, 염라여왕이라는, 멋지지만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는 별명들을 지어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 공개했다. 까만 머리 앤은 주근깨가 많아 어릴 적에 깨순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회원에게, 안드리 헵번은 오프라인 모임 때 짧은 머리에 우아한 옷차림을 했던 회원에게 붙여준 이름이고, 일철남은 일찍 철든 남자라는 뜻으로 우리 모임의 청일점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맹꽁 여사는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는 회원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인비저버는 인비저블 옵저버의 준말로, 시즌 2의 시작은 같이했으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계속 나오지 못하는 회원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는 매번 줌 화상 회의실 개설 시간을 예약해주고 녹화된 동영상을 내려 받아서 보고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관찰자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임의 공동운영자인 염라여왕은 독서 동아리 지원사업에서 지원금을 따내 회원들이 책 선물을 받게 해주고 작가초청 특강 지원금도 따내 멋진 오프라인 행사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쓴 소리도 잘한다. 내가 생각 없이 SNS에 개인정보가 포함된 사진을 올리거나 제삼자의 사진을 올리면 가차 없이 지적한다. 그녀 덕분에 나는 랜선 여행자의 기본기를 갖추게 되었다.


이번 책은 정말 재미있었고 독서 모임도 무척 즐거웠다. 독서목록에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의아했다는 회원도 있었으나 책을 다 읽은 그녀는 허클베리 핀의 광신도가 되었다. 지난 주 초엽부터 친정어머니의 입원, 남편의 부상, 아들 집 청소까지 허리 펼 틈이 없었던 그녀의 집에 오늘은 두꺼운 식탁 유리가 이유 없이 깨지는 이변이 발생했다. 독서 모임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다면 그녀는 백 프로 결석이었을 것이다. 겁에 질린 그녀가 화상 회의실에 얼굴을 내밀고 유리 파손 소식을 전했을 때 우리 모두 놀랐다. 모임 끝난 후 그 집에 가보니 부엌과 거실이 난장판이었다.

우울하게 하루를 보낼 뻔했던 그녀가 우리와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을 회복했다. 그녀는 허클베리 핀을 가리켜 ‘놀라울 정도로 무식하고 기겁할 만큼 순수하다’라고 표현했다. 온갖 엉뚱하고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악동을 보면서 그녀 자신의 ‘야생적 본능’이 일깨워지는 것 같았다.

이 책 서두에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나 교훈이나 줄거리를 찾으려는 자들은 기소당하고 추방당하고 총살될 것’이라는 군사령관 명의의 경고문이 나온다. 우리의 염라여왕님은 이런 엉뚱한 경고문을 적어놓은 마크 트웨인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영리한 작가는 이런 효과까지 다 계산한 것이리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 경고문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나는 이 경고문이 나처럼 지나치게 진지한 독자나 비평가들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면 자동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찾는 나는 이번에도 ‘마크 트웨인이 허클베리 핀이라는 인물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헉의 모델은 작가 자신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읽고 있었다. 작가가 서슬 퍼렇게 경고한 짓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서 또 웃었다.

트웨인은 머리를 비우고 그냥 웃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주제 의식이 있고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인물과 배경이 있다. 몇 개의 만담으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하나의 소설작품으로 만들어낸 그의 능력은 헤밍웨이에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미국 문학이 시작되었다’라는 찬사를 하게 만들었다.


오늘 모임에서는 당시 미국의 서민 세계에 퍼져 있던 미신들을 찾아보며 우리가 살면서 들어왔던 미신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 아침에 여자를 차에 태우면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 혼사를 앞둔 집안 식구들은 남의 집에 문상가지 않는 것 등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풍습들이 거론되었다. 최근 팬데믹 시대에 장례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전염병이 옮을 가능성이 큰 것을 보면서 혼사를 앞둔 사람이 문상가지 않는 풍속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고 상당한 과학이 섞여 있는 풍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리딩 가이드에는 헉과 흑인 노예 짐의 관계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안드리 헵번은 헉에게도 인종적 편견은 있었지만, 자신보다 헉을 더 위해주고 걱정해주는 짐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인식이 바뀌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는 거친 뗏목 여행에서 짐은 헉에게 친아빠가 주지 못한 사랑을 주어서 그의 자존감을 키워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짐의 도주를 돕는 일을 왓슨 아줌마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으로 생각했던 헉이 흑인도 고귀한 인간이라는 보다 높은 도덕률을 깨달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흑인의 도주를 돕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갈지 모른다고 갈등하던 헉이 마침내, “그래, 난 지옥을 선택하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활기를 줄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 훌륭한 작품이었다. 진정 예술가는 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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