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규정이라는 것이 어디서나 존재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에 대한 규정은 꽤나 까다로와서 학교에서 지정한 블라우스가 아니면 선도부에 걸렸다. 좀더 새하얗거나 깃 모양이 약간만 달라도 매의 눈으로 째려보는 학생주임과 선도부의 색출에 매일 등교하는 교문 앞에서 걸리는 애들이 있었다. 신지 말아야 할 신발, 매지 않아야 할 가방 심지어 귀밑 3cm라는 머리카락 길이의 규정 역시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지나고 나면 참으로 별 것 아닌 하찮은 복장 규정이었다. 칼같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학생의 도리라고 여긴 애들은 교문 앞에서부터 복장을 스스로 점검하면서 들어섰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삐뚤어지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경우, 걸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치마 길이를 더 짧게 만들기도 했다.
학교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어디서나 기준은 달랐다. 조직마다 기관마다 모임마다. 처음에는 매번 다른 기준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어느덧 물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갑갑한 규칙을 파괴하고 싶거나 이탈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강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고, 허용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은 안전띠 미착용으로 경찰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오히려 “다음부터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넘어가주는 경찰도 있었다.
사회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룰을 따르는 것은 질서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부득이하게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할 때도 있다. 혹은 고리타분한 법과 규정을 바꾸는 것이 옳을 때도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프로그래밍된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포용성을 갖고 벌어진 일을 수용해나가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릴 때도 있다.
강사는 직장인처럼 한 곳에 출퇴근하는 일이 아니라 강의가 다양한 곳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제출해야 할 서류도 제각각이다. 대체로 이력서와 통장사본 정도를 요구하지만 초등학교나 청소년 기관 등에서는 성범죄 조회 동의서나 개인정보 동의서에 사인을 하여 스캔한 것을 보내달라고 할 때도 있다. 밥벌이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보통은 요구하는 대로 서류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최근 한 기관에서 강의 의뢰를 하며, 지나친 규정 준수로 인해 피곤한 일을 겪게 되었다.
“강사료 기준에 부합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류가 몇 가지 필요한데 보내주세요” 라고 강의 담당자가 요청한 것을 보니 지나친 것들이 많다고 여겨졌다. 강의 계획서, 이력서, 개인정보동의서, 성범죄조회동의서 뿐 아니라 지금껏 강의한 곳에서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 제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회성 강의가 대부분인 강사들이 일일이 경력 증명서를 기관에 요청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서류라고 하니 요건에 맞게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대학 졸업증명서도 새로 발급하여 보내주세요” 라고 한다. 이유인즉 최근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이렇게 서류 조건이 까다로운 곳인 줄 알았다면 강의를 하지 않을 걸 그랬네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감정을 누르고 시간을 내어 구청에 가서 대학 졸업증명서 발급 신청을 했다. 알고 보니 대학 졸업증명서는 구청에서 발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학교에 공문을 보내어 다시 서류를 보내주는 시스템이라 발급시간만 2-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서류 신청을 하고 꼼짝없이 기다렸다가 졸업증명서를 받았고, 해당 기관에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답을 했다.
과연 강의 담당자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걸까? 규정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쓸데없어보이는 증빙서류까지 요구하는 걸까? 보통 작가라고 하면 출간한 책이 이력을 대신하기 때문에 대체로 강의료도 그에 따른 기준으로 책정하는 편이다. 자격증 사본 정도 요청하는 곳이 간혹 있을 뿐이다. 막상 강의를 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상태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이미 서류까지 다 제출한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결과는 잘 될거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규정은 중요할 수 있지만, 때때로 유연함도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규칙대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닐 수도 있지, 조금 허용해도 되잖아’ 라는 여유의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은 질서대로 움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고, 작고, 여리고, 두터운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나무가 고집스레 자신의 가지만 뻗어나가다 보면 모두 살아남지 못한다. 기꺼이 서로 다른 종들이 배려하고 조화로이 살아갈 때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넓은 품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