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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리나 May 30. 2024

로마가 아닌 볼로냐로 간
이상한 여행자(하)

볼로냐 미식 기행문2

표제 사진: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 (photo by Shutter Stock)


사진 선택과 디자인에 2배의 시간을 쓰다     

이 책은 맛, 향기, 빛깔의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1장의 주제는 맛이다. 처음부터 강렬한 비주얼로 독자를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권 작가님이 준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완성된 1장 원고를 받아든 디자이너는 계약요금을 내고 사용하는 포토라이브러리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일일이 검색을 하며 가장 내용에 어울리면서도 근사해 보이는 각종 파스타와 생햄, 식료품점, 볼로냐의 레스토랑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세심하게 고르고 고르는 작업이 본문 디자인을 정하고 1장 원고와 권 작가님의 자료 사진을 넘긴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1장이 끝이 아니었다. 2장은 향기로 치즈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다. 이 또한 사진 품질에서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사진 찾기 삼매경은 3장에서 정점에 달했다. 붉은빛 도시 볼로냐의 매력을 보여주는 지붕과 회랑, 각종 건물들의 사진이 지면을 채웠다.      

장인 정신으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골라내는 디자이너를 보면서 차마 마감 일정을 독촉할 수 없었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책의 평균 작업 시간에 비해 2배가량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 결과 모든 이들이 감탄하는 매력적인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 만들어졌다.     


볼로냐의 파스타 맛집 스폴리아리나의 라자냐(사진: 권은중)

높은 곳에서 바라본 볼로냐 도시 풍경 (photo by: Shutter Stock)

                                     볼로냐 카페 테르치노의 다양한 커피(사진: 권은중)


이렇게 공들여 사진을 골라냈으니 이 멋진 사진에 어울리는 근사한 표지 디자인과 그 디자인을 뒷받침할 제작사양이 필요했다. 어떤 색의 표지를 써야 할까? 볼로냐의 색깔은 붉은빛이었으니 큰 고민 없이 붉은색 낙점. 표지에는 반드시 볼로냐의 멋진 회랑 사진이 들어가야 했다. (사실은 붉은색이 식욕을 자극한다는 속설의 산물이다. 결과는 좋았다. 판매가 제법!) 그리고 본문 전체에 나오는 음식 이름, 지명, 인명의 이탈리아 타이포를 장식처럼 표지에 가득히 배치했다.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앞표지


감탄이 나올 만큼 매력적인 사진으로 가득한 본문과 이를 감싸는 강렬한 붉은 빛의 개성적인 표지의 책을 들고 서점을 방문한 마케터들은 “메디치에서도 이렇게 예쁜 책이 나와요?”라는 MD(서점의 책을 구입, 가공, 진열, 판매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주며 활짝 웃었다. 주로 정치사회 책인 메인인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온 책의 결과 다른 내용과 디자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경험과 감각, 애정이 녹아든 볼로냐의 책장     

볼로냐는 단순히 미식의 도시가 아니다. 법학과 의학을 발전시킨 세계 최초의 대학을 세웠고, 시민권을 지켜낸 현자의 도시이며, 암흑시대인 중세에 여성의 활동을 보장해 여성학자들과 예술가들을 길러낸 미녀의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한 협동조합의 도시이기도 하다.      

권은중 작가는 작은 도시 볼로냐가 어떻게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 볼로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친절하고 여유로운지 그곳에서 지낼 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책을 쓰는 과정에서 수많은 탐구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볼로냐는 왕이나 신이 아니라 사람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겼고,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볼로냐 사람들은 그 공동체에서 서로를 믿으며 서로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이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문득 도서전에서 구매한 책을 부치기 위해 찾았던 볼로냐 도심의 우체국이 떠오른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직원들 때문에 어찌할 줄 몰라서 쩔쩔매는 나에게 그들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오랜 시간을 동동거렸다. 손짓발짓과 영어 몇 단어를 이용해 겨우 책을 다 부치고 감사 인사를 하는 내게 그들은 너무나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내가 권은중 작가와의 첫 만남에서 ‘볼로냐’를 택하고 전체 원고에 대해 세세한 피드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권 작가에 못지않게 볼로냐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도서전 기간 동안 머물며 돌아보았던 붉은 빛의 아름다운 건물과 회랑들, 전시장에서 쉬는 시간에 마셨던 향기로운 카푸치노,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강렬한 라구 파스타, 깊은 맛의 파르미지아노 치즈, 생햄의 존재를 알게 해준 프로슈토와 살루미의 맛, 그리고 어디서든 다정했던 볼로냐 사람들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때때로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들추며 볼로냐에 머물렀던 순간을 그리워한다. 좀 더 많은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며 볼로냐를 꿈꾸고 볼로냐로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유도시, 대학, 미술과 음악 그리고 협동조합까지 볼로네제들이 어깨를 걸고 함께 만든 성취는 그 크기를 떠나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성취가 몽롱한 단어로 가득한 책들이 아니라 와인과 살루미와 치즈와 파스타 같은 일상의 음식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앎과 행함이 나란히 누워있는 볼로냐식 한 접시 요리는 나에게는 늘 영감을 준다.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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