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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리나 Oct 06. 2024

다시 읽는 클래식, 앨리스의 추억

종종 어릴 적 읽던 동화책 원본을 다시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사주셨던 전집의 명작동화들. 추운 겨울 방학,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읽던 그 추억의 동화들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여러 출판사에서 명작동화 완역본이 근사하게 잘 나오고 있다. 어떤 책은 초판과 동일한 장정을 내세우고 어떤 책은 매끄러운 번역과 현대적으로 세련된 디자인을 내세운다. 어쨌든 이들의 특징은 예쁘게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전 책들과 달리 매끄러운 번역과 훌륭한 장정이 돋보인다. 


언젠가부터 이런 책들을 한 권씩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등. 읽다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의미를 파악하기도 하고, 기억속에서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기도 한다. 나는 명작동화를 왜 굳이 찾아서 다시 읽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수백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어 공연되는 명작동화들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원형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언제 읽어도 좋고, 나이대별로 다시 읽어도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떠오르는 추억의 재현은 덤이며 콘텐츠 기획자인 내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긴 연휴가 이어지는 추석 무렵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정판 판매를 알리는 카드뉴스를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티파니블루 커버 양장본에 너무나 익숙한 앨리스 삽화가 금박으로 새겨진 그야말로 예쁜 책이었다. 더구나 한정판으로 500부만 판매하는데다 원화엽서 4종까지 준단다. "꺄아!" 환호성을 지르며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하고 추석 지나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뜯었더니 양장본과 엽서 세트가 래핑되어 있다. 래핑을 뜯어냈더니 이미지보다 열배는 더 예쁜 금박 양장본 앨리스와 원화엽서 세트가 나온다. 이 예쁜 애들을 그냥 둘 수가 없어 동네 카페에 들고 가서 근사한 인증샷을 찍었다. 책을 들춰보면서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엽서는 물론 본문의 삽화 상태가 놀라울 만큼 훌륭했다. 예전에 나온 앨리스 초판 양장본들을 살펴본 적이 있지만 그림 상태가 이 정도로 선명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원화를 복원했는지는 모르지만 1865년에 그려서 출판한 펜화가 이렇게 생생하게 섬세한 선으로 살아나다니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다.  

카페에서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차를 음미하면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었던 앨리스는 어린이용 각색은 아니었는지 빠진 이야기는 없었고 어린 시절 재밌어하면 읽었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특히 영어 단어로 말장난하는 구절을 어릴 때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다시 보면서 어떤 상황인지 명확히 파악이 되었다. 생쥐와 동문서답하는 구절에서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내가 지난날의 얘기(tale)를 다 하자면 눈물을 한 바가지 짜내며 하룻밤을 새도 모자라지.” 생쥐는 이렇게 한탄하면서 앨리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의 꼬리(tail)는 길고 말고요.” 앨리스는 생쥐의 꼬리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있는 기이한 일을 겪으면서도 침착하고 의젓하게 행동하려 애쓰는 앨리스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대견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해서 당황하고 사과하는 앨리스가 얼마나 귀여운지.. 읽으면서 앨리스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이야기가 끝나가는 게 아쉬울 만큼...


책의 말미에 루이스 캐럴의 삶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함께 작품 해설이 붙어 있는 점이 더 맘에 들었다. 별책부록을 보너스로 받은 느낌이었달까? 말더듬이라 사제 서품을 받고도 사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제관에 홀로 살아간 점, 친구의 딸들과 소풍을 가서 들려준 이야기가 책의 시작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구나 둘째 이름이 앨리스였다니.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 100여 개국에서 번역디었고 여러 버전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것은 디즈니 버전의 앨리스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싶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온 앨리스의 원피스 색깔과 티파니블루 커버의 색이 비슷한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앨리스는 넌센스 문학과 판타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책의 시리즈 제목이 '다시 읽는 클래식'이고 앨리스가 1편이라고 한다.  '다시 읽는 클래식'의 다음 차례는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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