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시대,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는 리더의 조건
2012~2013년은 페이스북 사용자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하면서 소셜미디어의 최강자로 자리 잡던 시절이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나름 이른 시기에 페이스북을 접한 나는 소셜 미디어 세상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대학동기들, 해외에 거주하는 옛 친구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소통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페이스북이 지닌 진짜 매력은 다양한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각 분야 고수들의 담을 찾아가 포스팅을 읽고 그 담에서 코드가 맞는 친구를 사귀고, 저자를 발굴하는 등 페이스북의 매력을 십분 활용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이 왔고 페이스북은 비대면 온라인 소통의 장으로 더욱 각광받았다. 어느 날 대표님이 내일 신수정 부사장님과 점심을 하기로 했다며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다. 마치 내가 당연히 그분을 잘 아는 것처럼.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난 그때까지만 해도 신 부사장님을 잘 몰랐기에 미팅을 앞둔 사전조사에 들어갔다. 팔로우를 해서(이미 친구 자리가 다 차서 친구 신청 불가) 포스팅을 살펴보기 읽기 시작했다.
신 부사장님은 거의 날마다 일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하루에 두세 편씩 올리고 계셨는데, 얼마나 핵심을 콕콕 짚어서 말씀해주시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별히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글 속에 빛나는 통찰이 있었다. 각 포스팅에 달린 좋아요 개수와 열렬한 공감의 댓글에서 얼마나 부사장님을 추종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부사장님을 ‘페이스북의 현자’라 부르는지 짐작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대표님과 함께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광화문 어느 식당에서 신부사장님을 만났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반짝이는 부사장님에게는 흔히 공기업 임원진에게서 볼 수 있는 권위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굴지의 공기업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굉장히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페이스북 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사장님.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그런지 인기가 많으시더라구요.”
“하하, 감사합니다.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해서 작은 모임들을 여럿 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토론하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제 글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보일 겁니다.”
알고 보니 온라인에서 말로만 가르침을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회에서 만난 후배들과 여러 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직장인들의 멘토였다. 대표님과 나는 부사장님에게 책 작업을 같이 하자고 졸랐다.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고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셨으니 기회가 닿으면 함께 작업을 하도록 하지요.”
아쉽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점심 자리를 파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꾸준히 부사장님과 소통을 하는 가운데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권위의식이 없고 젊은 층이 따르는 부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써주실 것을 제안했고, 부사장님도 기꺼이 동의해서 계약서를 쓰셨다. 이제 본격적인 진전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부사장님은 너무 바쁘셨다. 회사일 외에 사적인 시간에도 각종 멘토링과 강연, 칼럼 등 하시는 일이 너무 많아서 좀처럼 원고의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다. 나는 속이 탔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안부를 전하며 집필을 독려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사장님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페이스북에 실렸던 글을 모아 책을 내신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와 계약서를 쓰기 몇 달 전, 젊은 1인 출판사 사장이 부사장님을 찾아와서 페이스북 글의 열렬한 팬이라면 이 내용 그대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부사장님 말에 따르면 젊은 친구의 패기에 마음이 끌렸고 새로 글을 쓰지 않고 손보면 되니 부담도 없을 것 같아서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새 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저자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고, 우리의 기획과는 다른 콘셉트이니 큰 문제는 아니겠다 싶었다. 그렇게 몇 달 뒤 저자의 첫 책이 나왔고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쓰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첫 책이 히트를 친 것은 다음 책이 나왔을 때 플러스이지 결코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며 해를 넘기기 전 대표님과 함께 다시 점심을 같이 했다.
“부사장님, 코로나를 겪으며 참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아요. 회사 조직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겠죠.”
“우리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비대면 미팅과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조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요즘 mz세대들은 조직 안에서의 태도나 소통 방법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세대 간 갈등이나 고충은 없으세요?”
“맞아요. 이렇게 서로 다른 세대가 어우러져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는 조직을 이끌어갈지가 고민이 많죠.”
“그런 고민과 사례가 이번 리더십 책에 잘 담기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봅시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면서 어쩌면 첫 미팅에서부터 1년 6개월여의 시간을 끈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동안 너무나 큰 사회적 변화가 있었고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급속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대전환의 시대에 살아남는 리더십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는 책이라면 세상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
연말의 만남 이후로 부사장님은 두어 달 주기로 꾸준히 원고를 한두 챕터씩 보내오기 시작했다. 본인이 이끄는 리더십 공부 모임의 이름 ‘인스파이어(inspire)’가 가제로 붙어 있었다. ‘inspire’는 ‘(욕구·자신감·열의를 갖도록) 고무[격려]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동안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와 칼럼에 쓰셨던 이야기들, 실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리더십 원고였다. 부사장님은 보내오는 원고마다 피드백을 요청하셨다. 그렇게 원고를 보내오면 피드백해서 드리고, 다시 보내오시면 또 피드백하는 절차가 3번 가량 반복되었다. 모두 5개의 챕터를 3번 피드백하고 다시 받는데 약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초고가 완성되었다. 우리의 2023년 상반기 주력 아이템 중 하나였기에 초고를 바로 마케팅팀과 공유하고 편집기획서를 작성해서 1차 회의를 가졌다. 마케팅팀은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아무리 저자 파워가 있다 해도 리더십 책의 시장은 크지 않다. 따라서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내용을 앞으로 옮겨서 초반부터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고, mz세대의 사례가 좀 더 풍부하게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케팅팀의 조언을 저자에게 메일로 전달했고, 저자는 흔쾌히 그 뜻을 따르겠다면 순서를 조정해주면 그에 따라 다듬고 보강하겠다고 했다. 나는 전체 순서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작업을 해서 저자에게 수정 원고를 보냈다. 그러자 저자는 열흘 뒤에 전반적으로 순서를 바꾸고 사례를 추가한 원고를 보내주셨다. 내용을 살펴본 나는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에 교정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1주일쯤 지났을 무렵, 저자가 재수정이라면서 1부와 2부를 대폭 수정한 원고를 보내주셨다. 또한 3~5부도 다시 정리해서 보낼 테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대략 난감했지만 손봐주신 게 훨씬 좋으니 새 원고로 다시 교정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그렇게 원고가 완성된 이후에도 3번의 수정보완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로 본격적인 편집디자인 작업이 지행되었다.
나는 내가 드렸던 피드백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지속적으로 고쳐오는 저자의 디테일과 집중도에 혀를 내둘렀다. 피드백을 받고 보니 더 수정할 부분이 눈에 띄더라는 말과 함께 3주의 주말을 꼬박 바쳐가며 보완 작업을 해준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고치는 사람이다.” 출판계를 비롯하여 언론계, 방송계 등 글밥을 먹고사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글을 쓰는 것보다 다듬고 고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수많은 수정을 거쳐 편집이 마무리되면서 추천사와 관련된 논의에 들어갔다. 저자는 이미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으니 유명 인사의 추천은 필요 없었다. 나는 오히려 저자의 글에 공감하는 페이스북 독자들에게서 의미 있는 글을 받고 싶었다. 저자도 이에 동의했고 책의 표지와 함께 이런 나온다는 소식을 올리도록 했다.
포스팅을 하자마자 수백 개의 좋아요와 200개에 가까운 댓글이 쏟아졌다. 그중에 의미 있는 댓글 세 개를 골라 싣기로 하고 저자에게 그분들의 동의를 받아달라고 했다.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 철학,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살아있는 지혜를 얻다.”
IT 기업의 CEO인 멘티가 쓴 이 댓글을 카피로 쓴 이유는 바로 이 글이 이 책 <거인의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3년 5월말에 출간되어 경제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거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저자가 서문에 쓰고 마케팅팀이 우려했듯이 국내 저자가 쓴 리더십 책이 잘 팔리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은 세계적인 경영그루의 깊은 통찰이 담긴 책도 아니고 유명 CEO의 성공 스토리도 아니다. 대신 뜬구름 잡는 공허함이나 저 현실 너머의 이상을 다루고 있지 않다. 탄탄한 현장 경험을 갖춘 리더가 들려주는 실전 리더십 코칭이며, 늘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기 좋은 리더십 교과서다. 이 책의 가치는 이러한 실용성에 있고 그래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