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
어릴적 우리집은 대가족이었다. 5형제의 맏이인 아버지는 일찍 결혼을 하셨지만, 반대로 둘째 작은아버지의 결혼이 늦어졌다. 덕분에 삼남매의 맏이인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조부모님 외에 네 명이나 되는 미혼의 삼촌들과 일하는 언니(우리는 고모라고 불렀다)를 포함한 12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음식 솜씨가 좋고 자상하신 할머니와 무뚝뚝하시지만 손주들을 사랑하는 할아버지, 장난기 많지만 조카들을 예뻐하는 삼촌들과 함께한 이층집 시절은 내 어린 시절의 황금기였다.
식구가 12명이나 되다 보니 삼시 세끼는 물론 간식을 만드는 것도 큰일이었다. 할머니가 방앗간에서 뽑아온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혀 만든 고소하고 쫄깃한 인절미에 조청을 찍어먹거나 손수 만드신 약식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삼촌들과 우리들은 특히 빵을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태극당이나 나폴레옹 제과에서 소보루나 팥도너츠, 크림빵을 사오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비싼 빵을 자주 사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다들 좋아하는 빵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많이 만들려는 궁리를 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배고프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에서부터 엄청나게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아닌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그 냄새는 점점 진해졌다. 그 냄새의 정체는 2층 거실 구석 바구니에 담겨 있는 도너스였다. 요즘으로 치면 올드패션드 도넛, 평범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한 도넛이었다.
엄마는 기름이 가득한 둥근 프라이팬에서 도너스의 양면을 뒤집어가면서 튀기더니, 나무젓가락으로 하나씩 건져서 달력 종이를 받친 소쿠리에 올려 기름을 뺀다. 잠시 후 고모가 기름이 빠진 도너스를 큰 스테인레스 밥통에 담는다. 벌써 밥통의 반 정도가 찼다. 엄마와 고모가 도너스 만드는 걸 구경하던 동생들도 밥통에 담긴 도너스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있다. 그 옆에는 아직 안 튀겨진 도너스 반죽이 쟁반 위에 나란히 줄을 서 있고, 나무 도마와 밀대, 모양을 만든 주전자 뚜껑, ‘오뚜기 도너스 가루’라는 글자가 쓰인 큰 봉지가 있다. 거실 곳곳에는 흰 가루와 기름 냄새가 범벅이다.
“엄마, 집에서도 도너스를 만들 수 있네. 이 가루로 만든 거야?”
“그래, 시장 수퍼에 가보니 이게 있더라. 우유와 계란 넣고 반죽해서 밀었더니 도너스가 이렇게 많이 나온다. 우리 식구들 실컷 먹겠어.”
“이야, 신기하다. 근데 저건 뭐야?”
내가 가리킨 쟁반 위에는 도너스 10여 개가 따로 놓여 있었는데,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갈색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아, 그게. 초콜릿 도너스를 만들까 해서 초콜릿을 녹여서 부어 봤는데 모양도 안 이쁘고 굳으니까 너무 딱딱해져서 못 쓰겠어. 저건 망했어.”
엄마는 겸연쩍어 하면서 초코 도너스 시도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으신다.
한쪽에는 밀대로만 밀고 아직 모양을 안 만든 반죽이 남아 있다. 나는 고모가 도너스 모양 만드는 걸 지켜보다가 손을 씻고 와서 나도 만들겠다고 나섰다. 얇게 민 반죽을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서 동그란 모양을 만들고, 냉동아이스바를 만드는 동그란 틀로 가운데 맞춰서 구멍을 만들면 도너스 모양이 만들어진다. 동그란 모양은 도너스와 함께 그대로 튀겨내고 남은 반죽들은 모아서 마름모 모양을 만들거나 다시 도너스 모양을 만든다. 이 작업이 은근히 재미가 있어서 한참을 몰두했다.
“얘가 재미 들렸네. 그만하고 도너스 먹어. 배고프겠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한 잔 따르고 부엌 식탁에 앉아 바구니에 담긴 도너스를 먹기 시작했다. 배고플 때 먹는 그 맛이 얼마나 기가막혔던지... 당시 내 기분으로는 웬만한 제과점에서 파는 빵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튀긴 반죽 속에 팥을 넣거나 크림이 들어가거나 하는 도너츠가 대세였기에 이런 올드패션드 도넛을 파는 제과점은 없었다. 희소한데다 맛있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가. 다른 식구들도 반응이 좋았기에 그 이후 엄마는 주기적으로 두세 달에 한번씩은 도너스를 왕창 만드셨고, 한 번 만들어놓으면 우리는 며칠씩 부엌을 들락거리며 찬장의 스테인레스 밥통에 담긴 도너츠를 꺼내먹었다.
둘째 작은아버지가 결혼하고 교사인 두 분이 합가를 하면서 부모님은 분가를 하셨고, 우리 다섯 식구만 따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먹성 좋은 남동생 둘에 사업하시는 아버지는 손님을 자주 초대했기에 우리집에는 늘 간식이 끊이지 않았고 엄마의 도너스 만들기도 계속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해 아이 둘을 낳았다. 엄마의 손주 사랑은 지극했지만, 둘째가 태어날 무렵 암 진단을 받은 엄마는 4년 후 세상을 떠나셨다. 종종 우리 집에 놀러와 며칠씩 묵으실 때면 칠순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야속한 하늘은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들이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특히 애교 많은 둘째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둘째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 산책을 하실 때면 돌아올 때 손에 과자를 하나씩 들고 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리지만 눈치 빠른 녀석은 할머니가 자기를 엄청 이뻐한다는 걸 알았고, 산책 끝에 늘 동네 슈퍼로 할머니 손을 이끌었던 것이다.
나도 엄마를 닮아 아이들에게 음식 해먹이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도너스 생각이 났다. 슈퍼에 가보니 여전히 똑같은 추억의 오뚜기 도너스 가루를 팔고 있었다. 당장 사 들고 와서 반죽을 하고 모양을 만들고 도너스를 튀겼다. 그런데 다섯 살짜리 둘째가 자기도 모양을 만들고 싶단다. 엄마와 처음 도너스를 만들던 날 내가 그랬듯 둘째도 주전자 뚜껑으로 반죽을 찍고 동그란 틀로 모양을 만들었다. 자투리 반죽을 주었더니 동물 모양을 만든다며 만지작거렸다. 그날 둘째와 함께 도너스를 만들면서 오랜만에 엄마와의 그리운 추억을 떠올렸다.
문득 오뚜기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도너스 가루를 처음 만들어줘서 고맙고, 오랜 세월동안 그 상표 그대로 계속 제품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엄마와의 추억을 내 아이들과 다시 되새길 수 없었을 테니까.
* 이 글은 오뚜기 스토리 공모전에 제출했던 작품입니다. 공모전은 글자 제한이 있어서 내용을 줄였는데, 이것은 원래 썼던 이야기의 전체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