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기에 조화롭고 편안한 것들이 있다
5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흰머리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처음에는 무심히 넘어갔는데, 점점 많아지면서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염색을 할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을 듯하여 염색 시기를 최대한 늦춰보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날 멋진 백발을 한 60대 전문직 여성을 보게 되었다. 백발을 그대로 둔 그녀의 당당함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중년의 멋은 청춘의 멋과는 다르다. 젊은이들과 아름다움을 경쟁하려 하지 말자. 당분간 내 사전에 머리 염색은 없다."
그러고 나서 우연히 이 책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를 발견했다. 기획서를 쓰기 위한 시장조사차 산 책이었지만, 내 상황과도 겹치는 제목이 눈길을 확 끌었다. 몇 페이지를 뒤적여보니 진솔한 내용이 맘에 들었다. 나는 중년이지만 이렇게 멋지게 살고 있으니 당신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아름다워야 한다, 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주지 않았다. 그저 중년 여성으로서 겪는 신체적 변화, 정서적 변화, 태도의 변화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가고 있었다.
첫 기미, 첫 흰머리, 첫 잇몸병…… 등을 겪을 때마다 일일이 충격 받았고 무언가 대책을 세워 극복하려고 애도 써 봤다. 하지만 결국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어느새 노화 현상과의 동거가 익숙해졌다. _‘질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흰머리를 고수하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포장했지만 내 몸의 노화현상에 대한 순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온갖 금전적, 시간적, 육체적 노력을 들인다 해도 노화를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억지로 시간을 거스르려는 노력은 자칫하면 추하게 보일 뿐이며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년이기에 조화롭고 편안한 것들이 있다. 내성적이고 붙임성이 없던 내가 어느샌가 함께 일하는 젊은이들을 챙기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로 변한 것을 느끼며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아, 이게 나이드는 것이구나." 싶다. 젊은이들은 내가 챙겨주는 오지랖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단 주의할 것은 절대 지나치거나 잔소리로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점! 젊은이들이 따를 수 있는 적당한 여유와 오지랖이 있는 중년 아줌마라니 굉장히 뿌듯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중년에게 필요한 소양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했다고 해서 그 긴장감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슬프다고 해서 울고 싶은 욕구를 마음대로 발산하지 않는다. 감정을 죽이라는 게 아니다. 긴장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연륜’이라는 녀석으로 잘 다스려 다른 감정으로 바꾸거나 마음속에 슬쩍 넣어 두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_‘감정’에서
저자의 말처럼 나이들면서 편해지는 것은 희노애락이 그렇게 예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욕구가 무뎌진 것인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웬만한 것은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사실이 나쁘지만은 않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라 생각하면 앞으로도 40년이 넘는 긴 세월이 남아 있다. 이제부터 변화하는 노화현상에 적응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나이 먹고 싶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