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표정
"나는 뉴피(Newfie)예요."
만날 때마다 그 말을 하던 고객이 있었다. 캐나다인이 아니라 뉴피. 뉴펀랜드(Newfoundland)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와 닮은 표정으로 자신이 뉴피라고 했다.
대서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 토론토에서 2,000km. 배로 일곱 시간. 한국 면적보다 크지만 극히 낮은 인구밀도. 그 고립이 만들어낸 독특한 억양과 문화가 궁금했다.
퀘벡을 떠나 동쪽으로 향했다.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시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바다로 둘러싸인 이 세 주를 해양주(The Maritimes)라 부른다. 그 너머에 뉴펀랜드가 있다.
뉴펀랜드. 이름부터 '새로 발견된 땅'이다. 캐나다에 가장 늦게 합류했다. 나라가 세워지고도 82년이 지나서였다. 억지로가 아니라 투표로 결정했다. 아주 근소한 표차로. 소속될까 말까 끝까지 망설였다.
워낙 동떨어져 있어 캐나다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조차 방문하기 어렵다. 평생 한 번쯤 가볼까 싶은 곳. 거기가 그랬다. 며칠을 달려 노바스코시아의 끝자락에 도착했고, 페리로 갈아타고 일곱 시간을 더 건넜다. 배에 올라 갑판에서 한참 고래를 기다렸다. 이 해역엔 흔하다고 했지만 끝내 보지 못했다.
섬에 닿자마자 음식점부터 찾았다. 바다 천지인 이곳에는 해물이 얼마나 많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찾을 수 없었다. 겨우 한 곳을 알아내 가보니 가게가 아니었다. 픽업트럭 뒤 물탱크에서 생선 한 마리를 꺼내 건넸다.
왜 생선가게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여긴 모두 뱃사람이고 어부들이라 원할 때 직접 잡는다고. 각자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 바탕엔 어부가 있었다. 선생님도 운전사도, 그 이전에 그들은 고기 잡는 사람이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걷고 또 걸었다. 카레가루를 뿌린 듯 노란 바위들. 4억 6천만 년 전의 암석이었다. 캐나다의 끝에 왔는데, 태초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사방이 바다였다. 파도밖에 없어 파도만 몇 시간을 뚫어지게 보았다. 내가 알던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라고 이름 붙여지기 훨씬 전부터 거기 있던, 근원적인 물의 포효.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한 덩어리였다. 태초도 이랬을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내 말들을 흩어뜨렸다. 지금껏 알던 언어들이 모두 포말로 꺼졌다.
그렇게 며칠간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척박한 땅을 오르내렸다. 돌산, 자갈밭, 진흙탕.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팔이 몸 아래 깔렸다. 우두둑, 선명했다. 손목뼈 두 개가 부러졌다.
금요일 밤의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간호사들은 처음 보는 환자에게도 "my love", "honey"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느리고도 다정한 말투였다. 응급실 담당 의사가 어떻게 다쳤냐고 묻길래, 당신네 주가 너무 아름다워 정신 팔려 걷다가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편히 대해 주었다.
그날 밤 응급실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어쩌면 섬 전체에서도. 낯설었을 텐데 오히려 환대를 받았다. 섬은 고립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를 놓지 않았다.
응급 깁스를 하고 토론토로 돌아왔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한참 동안 오른팔을 쓸 수 없었다. 오른손이 하던 일을 왼손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뉴펀랜드는 퀘벡과 다르다. 퀘벡은 모여서 지킨다. 언어를, 역사를, 정체성을.
뉴펀랜드는 흩어져도 새긴다. 고향을 떠나도, 본토와 동떨어져 살아도 자기 이름을 잃지 않는다. 뉴피는 뉴피로 산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그들에게는 어딘가 이민자 같은 기운이 감돌고, 그래서 익숙하다.
여기는 누구나 필요한 것을 스스로 길어 올린다. 무얼 하든 바닷사람임이 기본값인 사람들. 그들은 소속보다 자립이 먼저라는 걸 일상으로 보여줬다. 사람을 놓지 않았다. 소속이 아니라 존재로의 연결. 내가 있는 자리가 안쪽인지 바깥인지, 경계인지 중심인지. 그 구분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온전히 닿지 못한 채 흔들리며 바라보기.
아마 그게 내가 이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솔직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동쪽은 없다. 뉴펀랜드에서는 모든 곳이 출발이자 도착처럼 느껴졌다.
이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The Rock
뉴펀랜드의 상징. 고립되었지만 흔들리지 않는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