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 흩어져도 하나

이제 뼛속으로

by 소라비

"어쩜 여긴 이렇게 변한 게 없어?"

친구의 그 말 한마디에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달렸다. 여러 해에 걸쳐, 여러 계절을 지나며 조각조각 쌓인 풍경과 생각. 그것들을 하나로 엮었다.

친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이상 북미에는 미래가 없다고. 아시아만이 답이라고.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로 삼았다.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안다. 몹시 비좁은 곳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다. 공간이 작을수록 감정의 전이가 빠르다. 행복이든 슬픔이든. 화가 나도 피할 곳이 없다. 모든 걸 그 자리에서 견뎌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떨까. 이 방대한 국토는 사람을 어떻게 빚을까. 그래서 땅부터 시작했다.

온타리오는 길들여지지 않은 땅이 많았다. 사람들은 토론토에 밀집해 살면서도 끊임없이 빈 곳을 찾아 흩어졌다.
프레리는 바다를 닮았다. 물 대신 땅으로 채워진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비어있음으로 충만했다.
평원을 지나자 로키가 수직으로 섰다. 넓어서 자유로웠던 나라가 여기서만큼은 단호했다. 대자연 앞에서는 불평조차 사치였다.
산맥을 넘으니 밴쿠버였다. 모든 게 밀집해 있었다. 멀리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의 리듬 속에서 느림을 선택하고, 그 여유를 사람에게 건넸다.
대륙을 가로질러 퀘벡으로 갔다. 역사와 언어를 문신처럼 새기며 단단히 모였다.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쌓였다.
해양주를 거쳐 닿은 가장 먼 고립의 섬, 뉴펀랜드. 캐나다인이기 이전에 뉴피이고 바닷사람이었다. 흩어져도 사람을 놓지 않았다. 소속이 아니라 존재로 연결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 한국의 백 배에 이르는 영토. 이 넓이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결정지었다.

아직 내 발이 닿지 못한 곳도 많다. 유콘(Yukon),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 누나부트(Nunavut). 북쪽의 대지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곳들까지 합하면 이 나라는 훨씬 다양할 테다.

이 모든 지역들을 지나며 느낀 건 평화로움이다. 인구나 환경의 압박이 크지 않다. 절실함을 강요받는 분위기도 아니다. 넓은 땅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흩어놓았고, 흩어진 사람들은 서두를 이유를 잃었다.

여섯 개의 시간대가 하나의 국가 안에 놓여 있다. 밴쿠버가 점심을 먹을 때 뉴펀랜드는 저녁거리를 준비한다. 다름이 이미 일상이다. 같은 순간을 다른 시간으로 살고, 다른 언어로 말하고,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비교할 하나의 기준이 없다. 조급함을 요구하지 않으니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친구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변할 필요가 없다고. 느린 게 아니라, 빠를 이유가 없다고.

이렇게 넓고 흩어지고 달라도 하나의 나라로 작동한다. 이 느슨한 연결은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사람의 겉모습처럼, 국가의 테두리인 땅을 먼저 훑어보았다. 이제 그 안쪽을 살피려 한다. 구조와 시스템으로. 방대함을 지탱하는 뼛속으로 들어간다.




글을 쓰는 이유가 외로워서라고 생각했다. 이 연재를 시작하며 또 다른 이유를 발견했다.


이해받고 싶어서.


결국은 이 이유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한국을 말하듯,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곳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현재의 나인데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 없었다. 아니 오히려 꽁꽁 감췄다. 다름을 들키기 싫어서 혹은 그 다름에 정확한 좌표를 찍고 싶지 않아서. 서툴렀고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드러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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