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공휴일
엄마는 버선발로 부엌에 뛰쳐나가셨다. 설날 제사를 지내다 말고 갑자기. 떡국 올리는 걸 깜빡하셔서 급하게 냉동실을 뒤지셨다.
이민 와서도 우리 집은 줄곧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열네 시간의 시차 속에서 명절은 점점 멀어져 간다. 설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이 단순한 연결조차 어느 순간 흐릿해진다.
이 나라는 공휴일 하나 제 날짜에 못 맞춘다. 대신 2월 셋째 월요일이나, 5월 24일이 포함된 주의 월요일로 옮겨 쇠는 식이다. 한국은 역사적 날짜를 지킨다. 3월 1일, 8월 15일. 캐나다는 월요일을 지킨다. 기념일의 의미보다 긴 주말이 중요하다.
공휴일을 보면 캐나다가 얼마나 '쉼'에 진심인지 납득이 간다. 연휴가 지날 때마다 계절이 바뀌는 기분이다. 한 나라 안에서 빨간 날이 주마다 다른 것도 이제 놀랍지 않다. 방대한 국토란 걸 이미 살폈으니까.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거의 2주 동안 나라 전체가 멈춘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다들 그렇게 한다. 그 사이에 업무 메시지를 보내봤자 "Out of office" 자동 답장만 온다. 심지어 성탄절 이브에는 주식시장도 조기 폐장한다.
처음 이민 왔을 때 제일 황당했던 게 12월 26일 Boxing Day였다. 이 노잼 사람들이 다들 권투를 한다고? 한겨울에 모두 모여서? 알고 보니 영연방 전통의 휴일이었다. 지금은 쇼핑 대목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성탄절 다음까지 논다.
Family Day. 2월 셋째 월요일. 긴 겨울 한가운데 딱 한 번 공휴일이다. 가족과 보내든 친구와 보내든, 그냥 쉬란다.
Easter는 매해 바뀐다. 이르면 3월 말, 늦으면 4월 말. 대부분의 직장인은 Good Friday에 쉬고, Easter Monday는 일한다.
Victoria Day는 5월 말의 월요일 휴일이다. 여왕 생일을 기린다지만 정작 영국은 일한다. 탄생일마저 긴 주말에 맞춰 옮긴다. 한 해의 첫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날이다.
미국에 독립기념일이 있다면, 캐나다에는 7월 1일 Canada Day가 있다. 사람들은 빨간색 단풍잎 스티커를 붙이고 공원에 누워 있다. 애국심보다는 한여름이라는 느낌이다. 밤이 되면 사방에서 동시에 불꽃이 터진다.
8월 첫째 월요일 Civic Holiday는 공식 이름조차 통일되지 않았다. 각 주마다 저마다의 의미를 붙였지만 결국 여름에 한 번 더 쉬자는 의도다.
9월 첫째 월요일 Labour Day는 상징적이다. 여름의 끝이고 대부분의 학교가 바로 그다음 날 새 학기를 시작한다. 자녀가 있는 가정은 그 주를 통째로 휴가로 잡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만큼이나 회사에서 가장 피 튀기는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미국은 Thanksgiving이 11월인데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이다. 북쪽이니까 추수도 빨리 끝난다는 실용적 논리. 한국처럼 민족 대이동은 없어도 거의 유일한 가족 명절이다.
11월 11일 Remembrance Day. 현충일과 비슷하다. 은행과 우체국은 닫는다. 하지만 같은 주 안에서도 회사마다 휴일이 다르다. 직장이 연방법을 따르느냐 주법을 따르느냐에 따라 갈린다.
"Have a nice long weekend!"
금요일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들리는 인사다. 어떤 공휴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동절이든 추수감사절이든 그냥 'long weekend'로 통한다.
연휴 전날 점심시간쯤 되면 사무실이 비기 시작한다. 이때 일을 시키면 민폐가 된다. 웬만하면 다음 주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설과 추석. 이민 온 뒤 지키는 한국 명절은 이 둘이다.
여기 사람들은 설을 Chinese New Year라 부른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Lunar New Year라고 일일이 정정해 줘야 한다. 설에는 뜨문뜨문이라도 떡국을 먹으려 노력한다.
송편은 포기한다. 비싸기도 하고 사봤자 다 먹지도 못한다. 올해는 마침 부모님 댁에서 추석을 맞아 원없이 먹었다.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자주 잊는다.
명절 음식으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 칠면조 요리를 두 번 먹는 정도다. 칠면조가 어떤 맛이냐면, 한국의 전을 먹고 싶게 하는 맛이다. 너무 커서 정이 안 간다. 그래서 이맘때면 엄마의 부엌이 유난히 그립다.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세뱃돈 생각에 부자가 된 것 같던 그때.
Seniority
회사 근속 연수. 휴가 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오래 버틴 사람이 먼저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