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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문신처럼

by 소라비

"퀘벡 상품(Product of Quebec)이라고? 캐나다 산이 아니라?"

토론토 동네 마켓에서 메이플 시럽을 집어 들었다. 라벨을 보다가 잠시 멈칫했다. 같은 나라 제품인데도 굳이 '퀘벡 산'이라 적혀 있었다. 온타리오 산 메이플 시럽은 그냥 '캐나다 산'이다. 우리 퀘벡은 너희와 다르다는 듯, 표기 하나에도 선을 긋는 것 같았다.


퀘벡 주는 예전부터 자주 방문했다. 동생이 거기서 학교를 다녔다. 갈 때마다 새로운 마을을 발견하고, 갈 때마다 찾는 곳도 있다.


Kamouraska(카무라스카).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 다섯 시간. 다시 세 시간을 달려 퀘벡 시티에 닿고, 거기서 한 시간 더. 관광 책자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특별한 명소도,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그저 강과 들판, 오래된 집들만이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구는 600여 명 남짓. 나는 이 목가적인 분위기에 끌려 가끔 찾는다.


긴 운전 끝에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수십 년간 한 자리에서 훈제 생선만 파는 가게. 훈제 연어야 어디든 있지만, 가리비, 뱀장어, 철갑상어까지 갖춘 곳은 드물다. 가격도 적당하다. 한 팩에 만 원대. 이런 맛을 찾으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필요하다.


그 옆 베이커리에서 근처 밀밭의 밀로 갓 구운 빵을 사고, 치즈 가게에서 로컬 치즈를 고른다. 길 건너 dépanneur(퀘벡에서 부르는 편의점)에서 클램 차우더를 집는다. 손에 든 음식이 많아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산책을 한다.

불어로 쓴 ARRÊT 표지판이 눈에 띈다. 온타리오에서는 STOP/ARRÊT 두 언어를 병기하고,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영어인 STOP을 쓰는데 여긴 ARRÊT만 쓴다. 프랑스보다도 더 철저히 불어를 지키는 것 같다.


집들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지녔다. 정성껏 돌본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다.


공원으로 향한다.

저기, 전에 보이지 않던 깃발 하나가 나부낀다. 뭔가 글자가 쓰여 있다.


"1674. 350년"

그 숫자를 한참 들여다본다. 오래된 마을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다.

이곳은 나라보다 거의 200년이나 먼저 존재했다. 같은 언어로, 같은 땅에서, 그렇게 350년을 버텼다.


캐나다에서 '오래되었다'는 말은 왠지 만만하게 들린다. 건물이 100년 되면 문화재처럼 여겨지고, 50년 된 가게도 전통 있는 곳으로 불린다. 1867년에 태어나 이제 고작 158년이 된 신생국. 우리가 조선 시대였을 때 이 나라는 아직 생기지도 않았다.

이민 온 후로 근본을 잃은 기분이 들 때마다, 이 나라의 짧은 뿌리에 묘한 위안을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마저도 안 통한다.


지금까지 나는 거리를 재왔다. 온타리오를 벗어나는 데만 2,000km. 로키를 한 바퀴 도는 데 300km. 차로 달릴 수 있는, 쉽게 잴 수 있는 길이였다.


그러다 Kamouraska 깃발 아래에서 처음으로 다른 단위를 마주했다.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다. 넓이가 아니라 깊이다. 킬로미터는 달릴 수 있지만 350년은 살아내야 한다. 하루하루, 한 세대 또 한 세대씩.


퀘벡은 캐나다의 주 중에서 가장 넓다. 온타리오보다 훨씬 더. 그리고 나라보다 오래된 마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주의 공식 언어는 불어뿐이다. 몬트리올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국제 도시니까. 올드 퀘벡에서는 영어도 통한다. 관광 도시니까. 하지만 그 두 지역을 벗어나면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일부러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퀘벡은 북미 유일의 불어권이다. 다른 지역에도 불어 사용자가 있지만 소수다. 남쪽으로는 미국, 서쪽으로는 영어권 캐나다가 있다. 사방에서 영어가 밀려온다. 그래서 절실하다. 도로 표지판에는 불어만 있다. 간판도 반드시 불어로, 영어보다 두 배는 크게 써야 한다. 이민자 자녀들도 불어 학교에 보내야 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다.


처음엔 이런 노력들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년의 간극은 그들이 지키려는 이유를 설명한다. 캐나다 안에 퀘벡이 들어간 게 아니라, 퀘벡이 먼저 있었고 퀘벡이라는 바탕 위에 캐나다라는 이름이 얹힌 것이다. 원래 주인임을 잊지 않으려는 표식이다.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사실의 확인이다. 언어를 잃고 싶지 않아 간판 하나, 단어 하나에도 소명과 소망을 담았다.


그래서 Kamouraska가 부럽다. 정체성의 문제를 600명의 이웃이 함께 짊어진다. 공동으로 저항한다.

넓은 땅에서는 흩어져도 된다. 어디서든 여전히 같은 국가니까. 하지만 어떤 것들은 모여야만 이어진다. 끊기는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그들은 뭉쳤다.


지금까지 본 이 나라는 넓이를 향했다. 끝없는 땅을 달리며 확장해 왔다.
하지만 퀘벡은 깊이를 돌아본다. 350년 전을, 언어를, 잊힌 이름들을.
캐나다가 앞으로 갈 때, 퀘벡은 뒤를 지킨다. 서둘러 가면 쌓였던 것들이 흩어진다.




"Je me souviens"

퀘벡 차량 번호판의 슬로건. '나는 기억한다'.

문신처럼 차에 새기면서까지 붙들고자 하는 역사가 있다. 이 땅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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