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없는 질서
토론토 체감온도 영하 27도. 십 년 가까이 된 차에 시동이 걸리는 게 기특하다. 히터를 켠다. 따뜻해지려면 한참 걸린다. 출발한다. STOP 사인에서 멈춘다.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언젠가 경찰한테 잡혔다. 바로 여기서.
출근길을 나서자마자였다. STOP 표지판에서 정지했고 다시 움직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경찰차. 나일 리 없었지만 길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멈췄다. 경찰이 다가와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버튼을 찾느라 허둥댔다.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인에서 안 멈췄다고.
납득할 수 없었다. 경찰차가 보여서 평소보다 더 조심했는데.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티켓을 받았다.
불복해서 법정까지 갔고, 졌다. 벌금에 법정 비용까지 더해졌다.
증명할 방법이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다.
하이웨이로 들어선다. 오늘도 정체가 심한 8차선 도로.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저 멀리 앰뷸런스 사이렌이 울린다. 뒤에 소방차와 경찰차가 뒤따른다. 그 순간 모두가 재빨리 차를 가장자리로 옮긴다. 차들끼리 거의 포개지듯 비켜서며 길을 튼다. 그 사이를 사이렌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응급차량이 교통정체를 뚫지 못했다는 얘기는 여태 들어본 적 없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간다. 앞에 선 노란 스쿨버스가 옆구리에서 STOP 표지판을 펼친다. 차들이 일제히 멈춘다. 뒤따르던 차도, 반대편에서 오던 차도. 아이들이 내려 안전하게 길을 건너고 STOP 사인이 버스 안으로 접히고서야 도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토론토 한복판을 가르는 스트릿카도 마찬가지다. 승객들이 오르내리면 근처의 차들이 정지한다. 사람들이 착해서라기보다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전차 문이 열리자마자 그 길은 횡단보도가 된다.
길거리에 공공 CCTV가 별로 없다. 블랙박스도 필수가 아니다. 사고가 나도 확인할 영상 증거가 없다. 경찰에 신고하고 면허와 보험 정보를 교환한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삿대질을 했다가는 사고처리보다 위협 행위로 먼저 연행될지도 모른다.
예전에 경찰 간부에게 직무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판단한다. 정교하지는 않다. 그래도 기계에 넘겨진 느낌은 없다.
내가 맞거나 상대가 맞거나. 판단하고 책임지며 조정해 나간다. 그래서 배웠다. 증명할 수 없으니 더 확실히 지킨다.
집 근처. 그 STOP 사인에 당도한다. 완전히 멈춘다.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경찰차는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도 없다. 그래도 센다.
Rolling Stop
STOP 사인에서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속도만 줄인 채 지나가는 것. 위반 시 티켓 대상.
Move Over Law
응급차량이 접근하면 차선을 비워주거나 가장자리로 비켜서야 한다는 법.
Right of Way
보행자 우선권. 보행자가 도로에 발을 들이면 모든 차는 멈춰야 한다. 재촉 행위도 금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