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토론토의 DNA

by 소라비

"Go Jays Go!"

지난 가을,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월드시리즈 결승에 올랐다. 직관하고 싶었지만 티켓은 2천 불에서 3만 불 사이. 중요한 경기답게 미친 가격이었다. 아쉬운 대로 거리응원을 나갔다.

시청 앞 광장이 블루제이스 유니폼으로 가득 찼다. 딱 한 번만 이기면 우승. 그것도 무려 32년 만에. 마냥 축제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다들 숨죽이며 스크린을 노려봤다. 그중 눈에 띄는 한 명. 상대편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간도 크다 싶었다. 블루제이스 팬이 그에게 다가갔다. 설마 시비라도?

하이파이브였다.

딱 소리가 나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다저스 팬이 웃으며 맥주를 들어 올렸고, 제이스 팬이 맞부딪혀 건배했다. 멍하니 그 장면을 봤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길 기대했나.

스크린이 안 보여 이리저리 움직이다 뒤에서 툭 치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휠체어였다. 그 많던 관중들이 물결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줬다. 불평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자리를 잡고 서니 터번을 두른 남자가 시야를 막았다. 비켜서니 이번엔 키파를 쓴 사람 옆이었다.

키파. 예전의 나는 몰랐다. 동전만 한 작은 모자로 정수리를 덮은 남자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모자 진짜 귀여워. 어른이 저런 걸 쓰고 다니네."

친구가 황급히 내 손을 내렸다.

"키파야. 유대인의 상징."

무지가 무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그냥 다 자연스럽다.

우리 팀이 삼진 아웃을 당할 때마다 사방에서 욕이 팝콘처럼 터졌다. 영어로, 스페인어로, 중국어로. 나도 질세라 한국어로 한마디 보탰다. 그러다 금세 한마음으로 "Go Jays Go!"를 외쳤다.

추운 날 네 시간을 서서 응원했다. 경기는 졌다. 이기면 우승 퍼레이드를 쫓아다니려고 작정했는데 허탈했다.

인파가 흩어졌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천천히 움직였고, 다들 그 속도에 맞췄다. 터번, 키파, 다저스 유니폼. 아무도 밀려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두와 섞인 내가 낯설지 않게 된 건.

어느 날 아침, 버스를 탔다. 차가 정류장에 서서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친 기계음과 함께 차체가 낮아지고 경사판이 펼쳐졌다. 그가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버스가 기다렸다. 누구도 눈치 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다음 정류장. 이번엔 자전거였다. 자전거 주인이 버스 앞쪽으로 걸어가 거치대를 내렸다. 자전거를 홈에 맞춰 올리고 앞바퀴를 눌러 고정했다. 잘 끼워졌는지 흔들어 확인하고 앞문으로 들어왔다. 승객 한 명 태우는데 한참이 흘렀다.

처음엔 여기 사람들이 유독 참을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토론토 도심 한복판을 가르는 University of Toronto 캠퍼스. 담장도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 관광객은 셔터를 누르고 학생들은 다음 강의실을 향해 바쁘게 걷는다. 동네 주민들은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다.

캠퍼스 맞은편에 CAMH 빌딩이 보인다. Centre for Addiction and Mental Health. 중독과 정신건강 치료 센터다.

왜 굳이 여기? 그러다 어떤 장면들이 겹쳐졌다. 땅값 떨어진다고 시설을 반대하는 데모, 장애 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는 부모들. 너무 한다 싶었는데 정작 나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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