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이를 세우고 수동문을 밀며
내 안에 그 많은 한자가 숨어있는 줄 미처 몰랐다.
한문 까막눈이다. 사자성어도 잘 모른다. 한자로 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이름 석자와 1부터 10 정도. 그마저도 7과 9는 헷갈린다.
작년 이맘때 오른팔 수술을 했다. 갑갑함과 무력감을 견디다 못해 몇 가지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중 하나가 일본어였다. 포기했던 한자였는데 교재를 보니 입이 먼저 읽었다. 그래봤자 기초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놀랐다. 한문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잠자고 있었다. 축적된 어떤 것들은 흔들어 깨우면 반응하는 모양이다. 내가 생각보다 무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다고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어느 재미작가의 소설을 현지인에게 추천한 적 있다. 저명한 문학상을 받았고 평도 좋은 작품이었다. 대여섯 살에 이민을 온 작가는 자신의 책을 영어로 썼다. 어땠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영어가 좀 서걱대."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영문학 전공자라고 두둔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느낌이 그렇다고 했다. 네이티브라면 쓰지 않을 단어를 굳이 골랐단다. 읽을수록 자꾸 걸린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 무언가가 내 안에서 스르르 접혔다. 매끈한 영어를 향한 나의 열망. 대여섯 살 때부터 북미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에게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면, 그보다 늦은 나이에 이민 온 나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그날 이후로 강박을 내려놨다.
생각해 보니 이민 온 첫 주부터 그랬다. 혼자 처음으로 다운타운에 간 날이었다. 욘게 스트릿에 가냐고 버스기사에게 물었다. 어디? 떨려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욘게라고 몇 번을 반복했지만 그는 계속 Where?만 크게 외쳐댔다. 창피했다. 결국 스펠링을 불러줬다. Y-o-n-g-e. 그제야 기사는 허탈하게 웃으며 타라고 했다.
토론토에서 가장 번화한 그 거리의 이름은 '영'이라고 발음해야 했다. 내 상식으로 영은 Y-o-u-n-g였다. 너무도 일상적인 단어가 자기네들만 아는 비밀처럼 돼버렸다. 맞고 틀리고 보다 먼저, 세상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낯선 문화 속에서 내가 알던 것들이 힘을 잃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는 말 앞에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 위에 더듬이라도 돋은 것처럼.
영어가 자라는 대신 한국어는 어느덧 멈췄다. 신조어를 모른다는 문제가 아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표현조차 낯가림이 시작됐다.
'반려동물'에서 ‘반려’의 뜻을 한참이나 몰랐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반려는 '서류를 반려하다' 할 때의, 돌려보낸다는 의미뿐이었다. 그마저도 책에서만 보던 말이라 반려자라는 맥락과 이어지지 않았다. 누가 키우다 버린 동물을 가리키는 줄로만 알고 세상에는 반려동물을 거두는 착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억지로 끼워 맞추며 오래 오해했다.
같은 언어 환경이 아니면 말의 생로병사를 함께 겪기가 어렵다. 퀘벡이 그렇다. 공식 언어가 불어인 이 주는 프랑스식 불어와 많이 다르다. 발음부터 단어까지 그 차이가 하도 심해 서로 소통이 힘들 정도다. 지리가 언어를 갈라놓은 탓이다. 내 모어도 비슷한 처지일 테다.
영어로 먼저 배운 것들엔 한국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회사에서 매일 쓰는 용어들을 한국어로 옮기면 초면 같다. Made in English.
한쪽은 정지하고, 한쪽은 자란다. 더 우쭐할 것도 주눅 들 것도 없다. 둘 다 줄어드는 느낌마저 든다. 이기는 쪽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둘 다 희미해지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내 머리 위의 더듬이는 한시도 접히지 않는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이 표현이 지나치게 튀는지, 너무 뭉툭하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감지한다. 자의든 타의든 모어를 내어주었고, 언어의 공백을 통과하며 저절로 몸에 얹어진 감각이다.
원어민은 자국어 속을 거침없이 누빈다. 나도 Made in English 표현들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한국어로 먼저 입력된 나머지 것들은 번역을 거쳐 수동 처리된다. 이미 번역한 문장을 거꾸로 되짚어 확인하기도 한다. 작은 자동문 옆에 그보다 큰 수동문이 있다.
번역에 반역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민자들은 그래서 반역자 같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끊임없이 말을 헤집고 의심하며 살아가니까.
언어에 날을 세운 마음이 부모님을 보면 뭉그러지기도 한다. 두 분은 영어가 짧으시다. 그런데도 집을 구하고 학교를 보내고 가족을 이끄셨다. 외국인 친구도 많으시다. 살면서 정말 필요한 말은 몇 마디면 충분한가 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담은 Sorry, Thank you, Hi 같은.
어쩌면 우리는 언어라는 영역에 너무 큰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반문도 외국어라는 족쇄에서 어느 정도 풀려난 사람의 투정이겠지만.
얼마 전 정부에서 온 우편물 하나를 열었다. 세금에 관한 안내서였다. 종이를 펼치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앞뒷면에 열여섯 개 언어가 빼곡했다. 당신이 뭘 알아들을지 몰라서 다 준비해 두었다는 인사처럼 읽혔다. 각자의 억양으로, 각자의 어색함을 안고 말해도 이 도시는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 같았다.
반역자들이 수감되기에 토론토는 꽤 괜찮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Yonge 거리를 걷는 이들을 스쳐 지난다. 나도 그 흐름에 섞여 길을 나선다. 더듬이를 세우고 수동문을 밀며.
ALL CAPS
영어권에서 문장을 모두 대문자로 쓰면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강조하고 싶다면 대문자 대신 볼드나 _밑줄_을 쓴다.
"SEND ME THE REPORT" - 화난 듯
"Send me the report" - 일반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