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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비교와 우울로 얼룩진 새해

학원은 정확히 12월 31일까지 다니고 그만두었다. 새해가 밝았지만 내 마음은 곧 죽을 사람처럼 어두웠다. ‘이제는 뭘 해야 하지?’ 이 고민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괴롭힌 질문인데, 학원을 그만두고 나니 다시 내게 찾아와 말을 건넨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대학을 안 갔음에도 잘 살아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엔 대학 말고도 선택지가 굉장히 많고, 넓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으니까. 4년 동안 하나의 과목을 깊게 파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갔지만, 결국은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재수를 한 내 친구들은 새해가 시작될 때쯤에는 다들 대학에 합격을 했다. 대부분은 공부 한 만큼 만족하는 수준의 대학에 입학을 했고, 그 사실은 나를 불행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나는 가끔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내 감정이니까 티 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굳이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부러움에 약한 편이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인 거니까. 친구들이 하나 둘 자신의 꿈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을 때 나는 새로운 꿈을 찾아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대학에 합격해서 앞으로 4년간은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친구들이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수록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는 그냥 학원을 다니다가 그만둔 백수일 뿐이었다. 결국 친구들을 만나서 한다는 소리는 “나 요새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 해! 나 이제 짬 차서 이것저것 다한다~! ㅋㅋㅋ” 이 정도가 전부였다. 보컬 학원을 다녔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는 것은 정말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비밀스럽게 말했다. 그것마저 모른다면 친구들은 정말 나를 한심하게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그 당시 수능과 논술이 모두 끝나서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 년 내내 공부만 했던 한이 쌓여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고 놀았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깊은 우울감에 외출이 줄어들었고, 내 생애 최악의 무기력한 생일을 보냈다. 친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 나는 우울증의 극치였다고 한다. 나는 가끔 우울감을 크게 느낄 때가 많은데 다시는 이때처럼 우울하진 않기를 소망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내 지난 한 해를 후려치는 아주 못된 우울감이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우울함은 중국 여행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나와 친한 친구 민기는 중국으로 여행 계획을 옛날에 잡아 놓았었는데,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아 비자와 여권 문제로 바빠졌다. 중국 충칭에는 중국으로 유학을 간 수아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민기는 굉장히 바쁘고 실행력이 빠른 친구라서 우울해서 처져있는 나를 단숨에 일으켜 세워 이것저것 일을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중국 갈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중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조금 달라진 수아가 달려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잠깐이라도 못 보면 어색함을 느끼는 나는, 조금 달라진 수아가 어색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계속 보아 왔던 친구처럼 대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많이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낯선 곳에서 자는게 무서워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여행에 참가하지 않았고, 커서는 내가 무리에 끼어있지 않거나, 나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없어서 기회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여행은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혼자 왔다면 그냥 지나쳤을 건물 벽에서 특이한 포즈로 사진을 찍거나, 밤에는 수아가 다니는 대학교를 산책하며 크게 노래를 불렀다. 화음을 맞추려고 굉장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매일같이 수아가 알아놓은 관광명소들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콧물 맛이 나는 국수 요리부터 환상적이었던 생선요리까지 여행하는 동안 배불리 먹고 왔다. 우리는 매일 저녁에 스케줄이 끝나면 일기를 쓰고 자기로 했고, 그 일기는 모아서 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문서 파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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