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DoG Oct 29. 2020

패션디자이너 학원에 등록하다

한창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말, 나는 첫 수업을 받으러 학원에 갔다. 아직도 기억하는 건, 첫 수업시작 전에 다들 모르는 상태여서 굉장히 어색했다는 것. 오전 열시에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10분 전에 교실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굉장히 평범하고 내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당시 탈색을 한 애쉬 머리였던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양아치로 생각할까 봐 모자까지 푹 뒤집어쓰고 나갔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염색은 물론이고, 귀에 피어싱을 많이 하고, 심지어 불량해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다. 내일은 모자를 벗고 와도 되겠다는 안도와 동시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으래 느껴지는 불안감과 어색함이 공존했다. 이대로 6개월간 같이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오늘 같이 점심을 먹고, 6시간을 같이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게 떨렸다. 낯을 많이 가리는 데다가, 붙임성도 없는 나는 진짜로 오전 수업 내내 구석에서 조용히 침만 삼켰다. 쉬는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고 핸드폰을 보거나 앞사람들을 조금씩 관찰했다. 왠지 나는 이곳에서 6개월 동안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배워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에 누구와도 친해질 자신이 없었다. 


첫 수업부터 굉장히 빡센 패턴 수업이었는데, 조별로 모여서 서로의 치수를 재어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갑자기 신체 치수를 서로 재고 기록해 준다고??? 오래 본 것도 아닌데 이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어느새 서로 치수를 재어주고 있었다. 점심시간 전까지 숨 한번 편하게 못 쉬고 시간이 지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수님의 소개로 우리는 밥을 함께 먹으러 갔다. 누구랑 같이 먹어야 하나 눈치싸움은 피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밥 먹는 동안 계속 눈치를 봐야 했다. 내가 어느 모임에서든 첫 모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혼자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도 않지만,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쟤는 왜 혼자 먹어?’ ‘쟤 왕따야?’ ‘쟤는 친구도 못 사귀고.. 진짜 불쌍하다.. 어떻게 같이 먹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쟤는 말도 없고 이상한 애 같아’ 물론 이건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까. 


첫날 학원이 끝난 후에 집에 돌아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개인플레이야. 그리고 난 그 반에서 왕따인 것 같아. 어차피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그리고 친해져야 할 이유도 없는 나였기에 그냥 재미없으면 그만두고 스타일리스트나 하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위로했다. 다음 날에도 역시 패턴 수업이었다. 학교에서 상의와 바지 패턴을 떠 보고 집에서도 혼자 이런저런 패턴 변형까지 다 해본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수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배웠던 패턴보다 훨씬 정교하고, 진도가 빨리 나갔다. 눈을 크게 뜨고 선생님이 하는 것을 바로바로 따라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어 수업을 못 따라가는 속도였다. 경험이 있는 나조차도 수업을 빠듯하게 따라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쉬는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려왔다. 수업 초반부터 이렇게 어려우면 어떡하지 하는 소리들이었다. 물론 나도 동감이었다. 3시간에 하나씩 패턴을 뜨다 보니 정신 바짝 차려도 힘든 수업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진도 대로 나가기 위해 더욱 속도를 낼 뿐이었다. 솔직히 국비지원 학원이라 조금은 널널한 수업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집에 가면 털썩 누워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학교 같은 스케줄이었다. 


오전 열시에 수업이 시작하여 오후 5시 정도에 끝이 나는데, 편도 1시간 거리인 나는 정말 학교 가듯이 주 5일 출근을 했다. 엄마 아빠가 학원 어떻냐고 물으면 그저 “학교 같아... 개 빡세...”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빡센 수업이라 무언가를 알차게 얻어 간다는 느낌에 뿌듯함도 함께 느꼈다. 패턴을 처음 배워보는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에게 항상 질문을 했고, 나는 어린 내가 남을 가르치는 게 부담스러워서 괜히 잘 모르는 척을 했다. 학원에 면접을 볼 때 내 나이를 여쭤보셨는데,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사회 어딜 가나 어린 편이었고, 당연히 내가 가장 막내일 줄 알았다. 첫 수업 시간에 각자 일어나서 짧게 자기소개를 했는데, 40대 아주머니부터 19살 학생까지 있었다. 순간 나보다 어린 친구가 있어서 깜짝 놀랐고, 생각보다 20대 초 중반의 사람들이 많아서 안심이 되었다. 처음에 앉았던 자리는 결국 고정석처럼 굳어버렸고, 맨 구석에 있다가 앞쪽으로 끌려 나온 나는 결국 비어있던 맨 앞줄 가운데 자리가 고정석이 되었다. 한동안 거기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첫 한 달간은 점심시간 때마다 눈치싸움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누구랑 무엇을 먹느냐가 관건이었다. 학원은 구로에 위치하여 주변이 온통 산업 공장이었고 (물론 조금 걸어나가면 시내였지만) 가까운 데에는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우린 편의점을 주로 갔다. 어색하고 긴장했던 첫 주가 지나고, 이제는 서로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름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은 이미 점심 메이트를 정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딱히 정해진 점심 메이트가 없었고, 그저 나와 같은 조원이었던 누나와, 혹은 다른 무리에 눈치껏 잘 섞여서 밥을 먹었다. 가끔은 눈치 보는 게 너무 싫어서 혼자 멀리까지 걸어 나가서 편의점을 가기도 했다. 이대로 학원을 계속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하게 점심 메이트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물론 나처럼 점심 메이트가 없어서 항상 눈치를 보면서 몰려다니거나 그냥 혼자 따로 먹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밥을 먹으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입에 거미줄 안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소위 인싸같은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조용히 다 듣고 있거나 그 사람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건 아마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총 18명의 학생이었는데, 이 중에 절반 이상은 거의 한 달 동안 말을 안 했을 것이고 내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말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도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는 무리를 만들었다. 어차피 6개월 동안 계속 봐야 할 사람들인데, 친해지는 편이 나에게도 더 좋겠다는 생각에 나도 그런 무리에 끼려고 노력했다. 노력이라고 해봤자 그냥 옆 테이블에서 떡볶이 시켜 먹는다는 말이 나올 때 수줍게 용기 내서 “저도 같이 먹어도 돼요?” 라고 물어보는 정도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보니 나는 어느 정도 무리의 핵심 멤버가 되어 있었고, 점심시간마다 무엇을 먹어야 맛있을지를 토론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행히 나에게 관심을 주고 다가와 줘서 내가 어렵지 않게 낄 수 있었고, 그냥 서로 잘 맞았던 포인트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전 16화 여행이 끝난 후 새로운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