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계속 빡세게 흘러갔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패턴과 봉제 시간이었고, 수요일은 이미지맵과 소재, 그리고 졸업작품 만드는 시간,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디자인 개발 시간이었다. 나는 수요일이 제일 쉽고, 또한 싫었는데, 그 이유는 교수님이 너무 대충 가르치는 게 눈에 보여서였다. 월, 화 나오시는 교수님은 강의보다도 실제로 패턴을 뜨고, 봉재를 도와주는 선생님이셔서 솔직히 교수님보다는 강사님 느낌이 강했고, 수업에 매번 열정적이진 않지만 학생이 열정적으로 배우려 할 때 대충 가르치거나 커리큘럼이 많이 밀리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월요일과 화요일은 비교적 수월하고, 손으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는 요일이 되었다. 교수님도 굉장히 착하고 수업 외의 잡답도 좋아하셔서 수업이 무겁지 않았다. 패턴을 빡세게 배우고 나서 그 패턴을 가지고 기본 H 라인 스커트, 팬츠, 셔츠, 자켓까지 만들어 가면서 재봉 실력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 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가 자켓을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자켓은 패턴과 봉제가 굉장히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학원에 와서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재미로 월요일이 싫지 않았다. 또한 학원에는 최신식 기계 재봉틀과 오버로크 기계, 그리고 단춧구멍 기계가 있었는데, 모두 내가 처음 써보는 기계들이었다.
오로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내게 열려 있어서 좋았다. 실을 자동으로 끊어주고, 자동으로 뒷박음질 해주는 기계 재봉틀이 있어 재봉 시간이 줄어드는 동시에 퀄리티가 올라갔다. 매번 가정용 재봉틀로 달각달각 작업을 해오던 나는 이제는 기계 재봉틀 없으면 작업할 맛이 안 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전에는 가정용 재봉틀로 지그재그로 오버로크를 치곤했는데, 학원에 있는 오버로크 기계는 알아서 오버로크를 빠르고 치는 동시에 원단을 알맞게 잘라주어서 작업 속도와 퀄리티가 급상승했다. 한동안 오버로크 기계가 너무 신기해서 원단 쪼가리로 틈만 나면 오버로크를 쳤는데, 그보다 더 신기한 게 있었으니 바로 단춧구멍 기계였다. 모니터로 단춧구멍 사이즈를 정하고 실을 끼워주면 알아서 단춧구멍 크기에 맞게 스티치를 치고 갑자기 칼이 나와서 구멍을 깔끔하고 예리하게 잘라내는 것이었다. 역시 기계가 정말 좋구나. 좋은 기계를 써야 옷의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말에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 수업이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실용적인데 비해 수요일은 수업은 지루하고 나태했다. 가장 심했다고 생각하는 날은 바로 원단과 소재에 대해서 배우는 날이었는데, 그 수업을 위해서 우리는 따로 시간을 내서 동대문에 방문하여 소재 스와치를 쓸어 담아오고, 엄청나게 두꺼운 소재 책을 펼쳐놓았다. 그러나 교수님은 그저 책 앞머리 부분을 낭독하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소재와 원단은 세상에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어요~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온 것 외에도 많은 소재가 있고, 음... 뭐 예를 들면 이런 거 (책장을 뒤적이고) 아니면 이런 거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면서 소재는 자꾸 자신이 익혀야 돼요” 교수님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쓸데없는 잡소리였다. 이 정도면 나도 교수 하고 돈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시간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조금 당황했는지 교수님이 지나갈 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 이건 뭐에요?” “교수님 소재를 구분 짓는 기준이 뭐에요?” 같은 질문이 계속 반복되자 교수님은 마치 다 가르쳐 줬던 것처럼 생색을 내며 모두에게 평직과 능직, 그리고 직끼와 다이마루의 차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쉬는 시간이 되자 칼같이 강의실을 떠나셨다. 결국 우리는 소재에 대해 거의 배우지 못했고, 나중에 월화 수업 교수님이 짧게 소재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셔서 오히려 잘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소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수업에 기대가 높았는데, 결국 내가 아는 지식과 다를 바가 없는 말만 듣고 끝이 났고, 그 외 다른 수업에서도 수요일 교수님은 정말 놀면서 돈을 벌어가셨다. 아마 전임교수라서 잘릴 위험이 없으니 더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지막 수업 시간에 교수님 평가서를 돌릴 때 익명으로 교수님의 수업 준비에 대해 비판을 했고, 다른 사람들도 다 비판글을 적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굉장히 통쾌했다.
그에 반해 목금 교수님은 정말 빡센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정말 열정적이셨고, 현직 패션 디자이너로 근무를 해오셨기 때문에 현장에서 꼭 필요한 능력과, 실무에서 쓰는 용어들, 그리고 포트폴리오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셨다. 패션 자료수집부터 시작해서 패션 일러스트, 그리고 포토샵과 일러스트 프로그램 다루기, 도식화 그리기, 작업지시서 작성하기, 그리고 포트폴리오 작업까지. 실무에 필요한 모든 수업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이루어졌다. 실제로 일주일 중에 가장 많은 것을 얻어 가는 날이었고, 다른 날은 빠져도 수업을 따라가는데 지장이 없지만 목요일과 금요일만큼은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가장 좋았던 수업은 도식화 수업이었는데, 연필과 자로 비율을 맞추고 네임펜과 얇은 볼펜으로 의류 도식화를 따는 수업이었다. 도식화를 완성해서 잘 되면 뿌듯함도 그만큼 컸고, 결국 도식화 실력이 디자인 실력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더욱 열심히 임했다.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것에는 항상 잘해 왔지만 문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 접해보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스파르타 식으로 강행하자 컴맹인 나는 따라가지 못했고, 흥미를 잃었다. 겨우 파일을 열고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홀로 남겨져 있었고, 교수님과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고 있었다. 한창 잘 해나가다가 포토샵과 일러스트에 가로막힌 난 한동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이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차이 나게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빠지지 않고 학원에 나와 수업을 들었고, 결국은 그 성실함 때문인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물론 눈에 띄게 기적 같은 성과는 아니었지만 예를 들면 전에는 파일을 못 열었는데, 파일을 열수 있게 되거나, 기본 설정이나 단축키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점등이 있다.
학원 수업을 마무리하는 포트폴리오에는 결국 내가 제일 싫어하던 일러스트를 이용해 스타일화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 힘들어서 그만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학원에 나와서 배웠던 게 참 뿌듯하고 보람차다. 이렇게 쓰고 나니 배우는 것에만 흥미를 느낀 아주 이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학원에 밥 먹으러 오는 학생이었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가 주된 관심사였고, 떡볶이를 시켜 먹는 것이 항상 나의 베스트였다. 나는 아토피가 올라와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도시락을 싸왔는데, 그때마저도 편의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컵라면을 사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밥 먹으면서 무슨 주제로 그렇게 재미있게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 시간만큼은 엄청 재미있고 꿀 같은 시간이었다. 물론 수강생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학원을 자주 안 나와서 퇴출된 사람도 있었고, 마땅히 마음 맞는 친구가 없거나 혼자인 게 편해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일부러 왕따를 시킨 건 아니지만 반에서 겉도는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18명 밖에 안 되는 이곳에서도 노는 무리가 갈라지고, 그 사이에 낙오자가 생기는구나.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다시금 학교에 돌아간 것처럼 학창 시절에 가장 자주 했던 고민이 드는 순간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우리 반을 위해 뭘 해준 건 아니지만 말이다.
6개월 동안 정말 학교 다닐 때처럼 규칙적이고 부담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취업성공패키지에서 달마다 주는 훈련 장려금과, 교통비, 식비로 불로소득이 생겨서 좋았고, 사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에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지각을 하고, 재미없는 이론수업에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침을 흘리며 졸기도 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는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줄 알았지만 졸업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배운 게 굉장히 적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가장 좋았던 점은, 학원을 다니면서 새로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항상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신을 볼 때면 괜히 외로웠다. 내 친구들 중에는 패션전공자가 없고, 관심도 없는 친구들이 많은데 학원에는 온통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흥분되었다. 브랜드도 너무 잘 알고, 옷을 보는 눈도 있어서, 사고 싶은 옷이 생기면 사진을 보여주고 서로 컨펌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컨펌을 받고 학원이 끝나갈 즈음에 초록색 패딩을 샀고, 지금까지도 내 겨울 아우터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아우터이다. 슈프림이나 팔라스 등 여타 스트리트 브랜드로 온몸을 휘감은 사람도 반에 있었고, 올블랙인데 디테일과 콘셉트가 쩌는 옷을 입는 사람도 있었다. 멋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학원 갈 때 매번 고민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패션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첫날에는 무조건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입고 가는 게 목표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시도를 하는 내가 되어갔다. 한동안 스타일리스트 할 때보다도 더 스타일리시하게 입고 다닌 시간이었다. 마치 학교생활처럼 그땐 평범했고, 가기 싫은 곳이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걱정 없이 좋은 시기였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될 때쯤 수료식이 다가왔다. 일주일만 다니면 끝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일주일은 뭔가 텅 빈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을 마무리하는 수료식에서는 수료증을 차례로 받았다. 물론 이건 대학 졸업 증명서처럼 쓸 일이 많지는 않아도, 내가 학원을 끝까지 잘 다니며 마무리했다는 것에 대한 증명서라고 생각했다. 학원 교수님들이 뽑은 우수한 항생 두 명에게 주는 우수상도 받게 되어 더욱 의미 있는 날이었다. 나는 지각을 많이 해서 못 받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한 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학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 내가, 결국 다니기로 결정한 게 너무나 뿌듯했다. 내가 이거라도 아니었으면 지금쯤 아마 알바만 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성취감은 더욱 컸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학원을 나와서 함께 배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괜히 애틋했다. 나는 매번 혼자 다른 버스를 타서, 그날도 어김없이 혼자 버스를 탔다. 11월 중순, 점점 겨울이 오는 게 느껴져서인지 마음이 좀 썰렁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게 이렇게 아련했던가. 그사이 내 카톡은 학원 친구들이 새로 판 카톡 방 알림으로 시끄러워졌고, 이제 매일은 못 보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