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쓰레기가 예술일까?

예술에 대한 어떤 생각

by 조용한 언니

나는 정작 작업을 하지 못하면서 전시엘 자주 다닌다. 전시를 함께 보는 이들은 나와 공부모임을 하는 지인들이다. 사람의 내면에 관심이 많은 온화한 이 여성들은 예술에 대해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진 좋은 관람자들이다. 이들과 얼마 전 다녀온 전시는 유명한 해외작가의 전시였는데 덕수궁 야외와 시립미술관에서 동시에 전시 중이었다. 뉴스와 sns를 검색하니 스포츠 스타나 배우들이 전시를 홍보하고 있었다.


초여름 장맛비가 잠깐 그친 사이 덕수궁 연못에는 오이꽃을 닮은 노랑어리 연꽃이 가득했다. 연못 수면 위엔 초록연잎이 비밀스럽게 덮여있었는데 자연의 초록 사이로 유럽의 예술가가 제작한 황금빛 커다란 구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이리저리 연못을 돌면서 생경스럽고 이물스러운 ‘예술작품’을 보면서 고요한 연못과 초여름의 나무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야외 전시를 보고 나서 전시실로 들어가니 자연 속에 생뚱맞던 설치작업들이 그나마 눈에 들어왔다. 색유리와 금속벽돌들이 어둑한 전시실에서 신비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전시장 내 글을 보니 인도문화에 영향을 받은 듯했고 유리벽돌들은 인도 장인들의 손을 거친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영성, 신화, 성소수자, 라캉 등등의 단어들이 작업을 소개하는 글에 등장했다. 내가 동행한 일행에게 서양은 인도가 없었으면 어떻게 예술을 했을까 하고 진담 섞인 농담을 하니 지인은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대규모 전시에 가면 냉소적이고 삐딱해진다. 유리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벽돌들, 그리고 색색의 거대한 금속 구슬들은 여러 단계의 작업공정과 제작과정을 거쳐 비로소 전시실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장인과 숙련 노동자의 손을 빌렸을 테고, 전시실에 오기까지 그리고 전시장 내에 설치되면서 다시 여러 사람의 섬세한 품과 수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름난 큰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다양한 매체의 조형예술을 보면서 나는 자주 전시가 끝난 후를 상상한다. 저 크고 거대한 작업들은 전시가 끝나면 어디로 갈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여러 과정의 제작비, 전시가 끝난 후 보관할 공간비용까지 생각하면 예술작업은 재능보다 결국 작가개인의 자본력, 경제적 사회적 인적 자원의 총합인가 싶다. 갈수록 이런 예술에 염증이 인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전시 기간을 거치고 난 후 창고에 가게 될 이 작업들은 과연 무얼까?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쓰레기가 예술일까 자주 생각한다. 예술가가 고민하고 성찰한 과정들,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상상력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종 예술적 상상력마저 자본은 필수불가결하고 그리고 그 예술이 여유와 세련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 가까운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러다가 오래도록 알고 지낸 후배의 소박한 전시엘 다녀왔다.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닌 이년 아래 후배는 졸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 결혼을 했다. 살갑고 마음 넉넉한 후배와 호불호가 분명한 내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가까운 후배였다. 가깝다곤 했지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다가 서로 마흔이 넘어 다시 만났다. 후배는 여전히 맑고 선량하고 따뜻했다. 들풀과 나무와 새를 좋아하는 후배는 습지보존활동을 한다고 했다. 아이처럼 신나서 숲 속에 숨어 피는 은방울꽃이 얼마나 작고 예쁜지 이야기했다. 자주 보자고 했지만 말처럼 자주 보지 못하다가 또 십 년이 지나서야 만났다. 보지 않고 지내는 동안 딸이 결혼하고 아들이 군대에 간 후배는 중년 여자가 되어있었다. 나에게 각종 야생초로 직접 만든 차를 선물했는데 그 사이 습지를 다니며 기록한 글과 그림이 책으로 나왔다고 했다. 이번의 전시는 습지를 다니며 그린 작은 그림들이다.

13년이란 시간을 습지보존 활동을 하며 그린 층층나무와 도롱뇽과 노린재와 멧비둘기의 알은 다정해서 눈도 마음도 맑아졌다. 습지에 사는 여러 생명들을 욕심 없이 어떤 욕망이나 목적 없이 그저 좋아서 그린 드로잉 작업은 아름다웠다. 내가 얼굴빛이 환해져 좋아하니 후배가 주섬주섬 보여준 최근 캠핑을 다니며 그린 드로잉은 더 사랑스럽고 실감 나서 보는 내내 좋다, 좋다 감탄을 했다.


집에 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후배가 건 낸 습지본존활동기록과 작업과정을 쓴 책을 읽으며 후배의 생명을 아끼는 어진 마음이 느껴져서 내 마음도 순하게 부드러워졌다. 내가 예매를 하고 본 떠들썩한 전시보다도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습지보존 활동가로 틈틈이 그린 후배의 작은 스케치들이 더 마음을 울렸다. 어쭙잖은 자의식 없이 순정한 마음이 그려낸 작업이 보석 같아서 예술은 이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오래오래 마음이 느긋하고 따뜻했다. 후배에게 그림과 글이 너무 좋아서 많이 위로받았다고 너 정말 작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후배는 이렇게 좋은 말을 해주니 기분이 너무 좋다고, 언니 말에 흥한 에너지를 받아서 중환자실에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러 간다고 답했다. 드물지만 착한 사람과 좋은 예술가가 일치할 때가 있다. 후배가 그렇다. 어질고 순한 예술가 덕분에 나도 꼬인 마음이 풀리고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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