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밤을 본 후
영화 <봄밤>을 보기 전, 함께 간 친구는 영화를 본 후엔 그냥 말없이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권여선의 짧은 소설을 영화로 만든 <봄밤>은 단촐한 60분 남짓한 영화였다. 김혜리의 필름클럽의 애청자인 친구와 나는 그전엔 정희진의 공부의 열렬한 애청자였는데 정희진 선생이 추천하는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요즘엔 김혜리 기자이자 작가가 소개하는 영화를 보고 종종 이야기를 나눈다.
이 날 우리는 영화를 보기 전에 작은 갤러리에서 하는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전시를 함께 보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알콜중독 여자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남자의 이야기가 화사할리는 만무하고 아늑하고 행복한 느낌을 줄리도 없으니 우리는 영화를 보고 그냥 헤어지자고 했던 것이다. 물론 아주 짧게, 담배 두개비를 피우는 시간만큼은 함께 하고 헤어졌다. 각각 집 안에 있던 알콜 중독이었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영화를 보고 이틀이 지났는데 계속 영화의 잔상이 남는다. 세상 쓸쓸하고 외로운 두 사람이 가지는 무해함과 그 애틋함에 대해서, 상대의 오류와 오점은 무력해지고 마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사랑하려면 다 세상 끝에 버려진 채로 흔들리며 서 있야 가능할 건가하는 어리석고 때묻은 생각을 하는 나는 애초에 사랑을 하기엔 글러먹은 존재일까 하는 생각까지.
영화 <봄밤>에서 내가 반하건 요양원에 들어가고 나가는 길이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몸 부비는 소리가 내내 들리던 굵은 나무와 긴 풀이 무성한 그 오솔길은 수환과 영경이 서로에게 돌아오고 다시 헤어지는 장면에 항상 나왔는데 그들의 사랑만큼 허허롭고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적막한 봄 밤, 피어나지 않은 목련 꽃 봉오리 아래 전, 영경이 엉엉 우는 장면과 함께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쓸쓸하게 아름다운 오솔길이었다. 사실 영화 <봄밤>은 매 장면이 적막하고 고요하게, 쓸쓸하고 아름다운 화첩을 보는 것 같았다.
늘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대사도 몇 마디 없고 울기만 하는 영화 <봄밤>의 한예리가 이렇게 좋은 배우인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영화감독 강미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찾아보니 무려 66년생. 미자라는 이름에서 젊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년 동안 자신의 꿈을 기록한 영화가 첫 영화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봄밤>은 꿈결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이 아닌 편집감독으로 내내 일하며 이번이 두번째 장편 영화다. 영화와 영화 사이, 그의 시간이 먹먹하고 뭉클하다.. 나도 2004년, 2006년 이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있는 것이다!
*꿈결같은 영화<봄밤>에 대해 쓰다가 66년생 영화 감독이 느리고 꾸준하게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감격해서 아주 계몽적인 결심으로 끝나버리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