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불안과 분노 슬픔까지

영화 <이사>를 보고

by 조용한 언니

불과 일주일 전 일도 시간 순서가 헷깔리면서 뒤섞이는 중년이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오감까지 생생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생생함은 아릿한 애틋함으로 이어져서 어느새 밑바닥에 있던 감정을 끌어 올린다.


영화 <이사>는 부모의 별거 전 날, 관객에게 향한 삼각 식탁의 모서리처럼 불안한 여자아이 렌의 애써 명랑하고 새된 소리로 시작한다. 창 밖은 여름 장마비가 퍼붓고 아빠는 밥을 먹다 말고 나가 혼자 숨겨둔 술병을 찾아 술을 마신다. 내일 아빠는 살 던 집에서 나가 이사를 간다. 아마 이 이사는 엄마 아빠의 이별로 이혼으로 이어질 것이다.


친구들에게 엄마아빠가 따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숨기는 렌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 마음 속에 숨겨둔 불안은 폭발시키지 못한 분노와 섞여 과학실에서 알콜 램프에 불을 붙여 일부러 엎지르거나 부모의 별거에 저항하는 집 안 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다. 그럴 때마다 렌은 달린다. 오직 할 수있는 건 달리기 뿐이라는 듯이 달리고 또 달리는 렌은 그렇게 달려서 불안과 분노와 슬픔의 터널을 지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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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참았는데, 엄마아빠는 왜 참지 않아" 라고 말하고 목욕탕 문을 걸고 나오지 않은 렌을 두고 문 밖에서 해묵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부모에게 " 나를 왜 낳았어" 라고 외친다.

(사실은 어처구니없게 나는 몇몇 장면에서 좀 울었는데 이 두 장면에서, 그리고 렌이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둘이서 호텔로 돌아올 때, 판타지인지 꿈인지 렌이 렌을 안아줄때,,,, 나는 왜 울었을까?)


삶은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도 힘들고 아이로 살기도 힘들다. 생애의 변곡점에서 다들 아프게 성장하는 인생은 아이도 어른도 다들 힘들기 마련이다. 이노무 인생!


영화를 보는 내내 렌이 비교적 풍족한 중산층의 아이라서 다행이야 하고 맘을 놓았다. 렌의 부모는 파산을 하지 않았고 그저 버블 경제가 꺼져가던 일본 사회,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던 그때, 여남의 역할에 경계가 무너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저 아이답게 투정부리고 아이의 언어로 어른의 세상에 외친다. 불을 질러도 렌을 안고 선생님은 불난 교실을 나오며 힐책하지 않고, 낯선 관광지를 헤매고 돌아다녀도 어쩌다 만난 노인과 그의 딸은 아이를 환대하고 보살핀다. 이 부녀와 렌이 나누는 대화는 성장 동화에서 아이가 현자나 마법사를 만날 때 나눌 법한 이야기들이다. 인생은 그저 한 손에 꼽을 만큼의 추억만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렌은 이 낯선 아늑한 집에서 잠을 자고 쉬고 간식을 얻어먹는다.


몇 푼 던져 놓고 집을 나가버리는 엄마도 없고

-아무도 모른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모여사는 다정한 비정상 가족을 국가가 해체 할 일도 없기에 -어느 가족-, 영화 <이사>는 안심하고 볼 수있었다. 아무도 불행하게 죽지 않고 아이를 팔아넘기는 악인도 없으며 파국으로 치닫지도 않고 그런대로 이 시기를 넘어 부모도 아이도 성장할 것이기에.

93년의 영화가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것은 감독 소마이 신지의 감각이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것이겠지. 90년 대 어느 여름의 동네 골목길과 강둑과 개천, 하늘과 구름과 장미비 그 뭉큰한 냄새와 소리들까지, 이 모든 것을 충실하게 혹은 효과적으로 화면에 배치하고 재현한다.


영화 <이사> 로 인해 홀로 헤매인 여름 축제의 밤, 판타지 속에서 행복한 시절, 자신을 안아주고 "축하합니다" 외치며 손을 흔들고 낭만의 시절을 보내는 여자아이가 혹은 그 아이와 비슷한 내 안의 열두 살 여자 아이가 문득 생각나 그리웠다. 나는 나를 안아주었나?.. 비록 지금 삶이 사나워도 어차피 삶은 사납고 인생은 한번도 내 편이 아니지만 이렇든 저렇든 삶은 계속될테니까, 축하합니다의 패기와 기세가 필요한 것이다.

#영화_이사 #소마이신지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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