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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동 노란 집과 계단길

오래된 작업의 아카이브_사라질 동네를 손으로 어루만지듯

by 조용한 언니
철산동, 여름의 기록 9 노란 집.jpg

2018년, 다시 찾은 철산 4동은 벽화 사업이 끝나 후라 동네의 외벽들에 페인트가 산뜻하게 칠해져 있었다. 여러 번 덧바른 것 같은 회칠 벽 아래에 늘 그렇듯 잡초들이 비집고 자라고 있었다.



철산동, 여름의 기록 10 행운 계단길.jpg

철산 4동 골목 사이의 길고 긴 계단들은 대부분 지름길이었는데 그 중 가장 긴 계단 앞에서 숨이 훅하고 막혔다. 저 긴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보슬거리는 초여름 비가 내리는 날 예닐곱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장화를 신고 타박타박 올라가고 있었다. 폰 카메라의 찰칵거리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갔는지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사진을 찍었지만 손을 흔들며 사진 찍어도 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빤히 쳐다보던 아이는 잠시 시선을 주고는 그냥 올라가버렸다.

언제 그려졌는지 모를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저 계단은 행운 계단 길이었는데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는 절이 중간 참에 있었다. 그 절 이름은 흥덕사라고 했다.

지루한 계단을 걸어가던 작은 몸집의 아이는 이 길을 오래 기억할까?



행운계단길_2019_.jpg


행운계단은 2019년 가을 이후 계단 층층마다 타일을 붙여 화사하게 변모했다. 관장님과 동네 몇몇 분들이 여러 날을 일일이 손으로 하나하나 붙여 완성했다. 곧 사라질 동네를 손으로 어루만지듯 한 조각 한 조각 붙였을 마음은 어떤 것일지 계단을 오를 때 마다 생각했다. 이런 손길, 이런 마음을 새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까?

철산동, 여름의 기록 11 도덕산 계단길.jpg

도덕산으로 가는 또 다른 계단길은 넝쿨로 가는 길과는 반대편에 있어 한두번 밖에 가보지 않았다. 이 게단길엔 크고 기름한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나무를 타는 것 같았고 계단을 내려올 땐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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