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친구야,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어

by 소람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Dancing for a borderless world!)


철원에서 개최되는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참여하지 못했지만 나는 늘 이 페스티벌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휴전 국가, 그중에서도 DMZ라는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에서 세대, 국가, 인종 경계 없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런데 요즘 부쩍 서로를 향해 선을 긋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일까. 나는 이 페스티벌의 슬로건을 꽤 자주 마음속에서 꺼내보게 되었다.



비비크림 발랐다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니

얼마 전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을 안고 달려 나갔더니 친구가 대뜸 ‘화장했네?’라고 물었다. 멋쩍게 웃으며 ‘피부가 칙칙해 보여서 조금 찍어 발랐어.’라고 대답했더니, 친구가 농담조로 ‘너도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멀었구나.’라고 말했다. 친구의 평소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그 말에 악의가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비비크림을 조금 발랐다는 이유로 졸지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칼 단발머리에 화장도 거의 하고 다니지 않는 친구는 아마 ‘탈코르셋’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탈코르셋은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으로서의 획일화된 모습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고 편안함을 누리자는 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을 하지 않거나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다. 나 역시 그동안 미디어에서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탈코르셋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용기 있게 탈코르셋을 외치는 사람들처럼 숏컷을 하고 민낯으로 다니는 등 갑자기 내게 엄청난 변화를 주는 행동을 선뜻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붙임머리 떼고, 브래지어 안 하고

그래서 나를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게 하는 작은 것들부터 천천히 버려 보기로 했다. 우선 긴 생머리에 대한 로망으로 나의 두피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던 고가의 붙임머리를 다 떼냈다. 가짜 머리를 전부 떼냈을 때의 그 후련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볍고 산뜻해졌다. 또 더 이상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게 됐다. 더운 여름 한 겹의 옷을 덜 입을 자유를 확보하게 되었고, 나를 꽉 조이던 물리적인 가슴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확실히 스스로가 느리지만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탈코르셋’과 같은 행동을 강요받아야 할 열등한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기 다운 모습을 자기만의 속도로 찾아갈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유부녀와 트랜스젠더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싶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 페미니스트의 세계는 너무 좁아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일부는 ‘탈코르셋’ 하지 않은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고, 일부는 결혼한 여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며 선을 긋는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시작점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제도에 순응한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는 4 비(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실천하지 못할 경우 페미니스트의 영역에서 가차 없이 쫓아낸다. 또,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일부는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만 페미니스트로 인정한다. 여성으로서 당한 차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나 트랜스젠더는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래디컬 페미니스트(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주장대로라면 나와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제3의 성이든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그들의 영역은 너무 좁아서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설 틈이 없다.


배제보다는 포용의 태도로

급진적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게 운동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 사회가 이만큼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태도보다는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페미니즘은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고립되고 말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운동,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연대했을 때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이제 한번 더 그런 흐름을 만들어낼 때가 아닐까.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페미니스트의 세계를 좀 더 크게 넓혀나가면 좋지 않을까.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이 슬로건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모두 함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 보면 여성, 남성, 그리고 제3의 성까지 모두 땀 흘리고 즐거워하는 그저 같은 사람일 뿐임을, 우리 모두 아름다운 지구별을 여행하는 동행자일 뿐임을 실감할 텐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며 말했다.

“친구야,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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