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소랑 Aug 03. 2022

방콕의 동네빵집을 무시하지 마라

나의 빵순이 인생은 이 동네빵집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방콕에는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국적이 다양한만큼 온갖 종류의 베이커리들이 존재한다. 독일식, 프랑스식, 이스라엘식, 일본식, 홍콩식, 심지어 한국식 베이커리까지 있다.


https://youtu.be/LcSV76mJT-s

♫ 음악을 틀고 글을 계속 읽어주세요.


나는 프로페셔널 빵순이로서 기본적으로 상 온갖 종류의 빵을 알고 싶고 먹고 싶고 사랑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아는 맛"의 단골집도 물론 좋지만 빵에 관해서는 새로운 것, 더 맛있는 것,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이 주는 흥분을 이길 수 없다. 사워도우가 먹고 싶을 땐 유러피안 베이커리를, 단팥빵이 당길 땐 일본식 베이커리를 찾아다니며 나만의 순위를 매긴다. 빵순이에게 방콕은 정말 심심할 틈이 없는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내가 아직 본격적으로 정복해보지 않은 종류의 베이커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순적이게도 태국식 동네 빵집이다. 대체 왜일까? 벌써 5년째 방콕에 살고 있으면서. 게다가 코코넛, 판단, 타로 등이 들어간 태국식 디저트를 보기만 해도 군침을 줄줄 흘리는 주제에. 왜, 어째서 아직 방콕의 동네빵집을 아직 섭렵하지 못한 걸까?


잠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그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아마 올해 초까지도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여기서 동네 빵집까지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면 그땐 진짜 끝이다."라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특정 음식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기피였으리라 짐작해본다.




이제 긴 서론을 뒤로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최근 이곳 방콕에서 엄청난 동네 빵집을 찾았다. 아니, 사실 2년 전에 한 번 방문했다가 군침을 흘리며 구경만 하고 나왔던 곳이니 "찾았다"라는 표현은 틀렸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렇게 두 번째 방문만에 그 진가를 알게 된 이 빵집은 태국 음식을 파는 식당과 베이커리를 겸하고 있다.


가게 내부. 아주 전형적인 태국 동네 빵집의 모습이다.


올해 초부터 다이어트 강박과 천천히 이별하며 "탈다이어터"로 거듭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군침만 흘리는 대신 가장 무난해 보이는 아이템 두 가지를 야무지게 집어 가지고 나왔다. 바로 아래 사진에 있는 코코넛 케이크 한 조각과 타로 빵 한 덩이. 그리고 이 둘에서 나는 방콕 어느 빵집에서도 맛보지 못한 천국을 맛보았다. '2년 전 이 빵집에 처음 왔던 날 그냥 지나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을 만큼 황홀한 맛이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식이장애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이 빵집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의 나는 2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으니까.


그저 코코넛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병이 있어서 집었을 뿐이었다. 이 선택이 내 빵순이 인생을 뒤집어놓을 줄이야.
부들부들 야들야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크림과 케이크 시트, 그리고 고소한 코코넛의 조합이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타로와 판단 (초록색 크림)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점원분께서 타로를 추천해주셔서 냉큼 집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부드러운 동시에 쫀쫀하게 촤르르- 하고 찢어지는 빵 결을 본 적이 없다.
저 보드라운 빵 결이 켜켜이 늘어나며 찢기는 황홀한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또 이 빵집을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너무나도 착한 가격이다. 전반적으로 모든 아이템의 가격이 요즘 방콕 베이커리 가격 수준의 반절 혹은 그 이하라고 보면 된다. (방콕 시내 쇼핑몰에 입점한 베이커리들 기준으로 요즘 빵 한 로프 가격은 최소 120밧 정도에서 시작하고, 시나몬롤 같은 단품 빵의 경우 최소 4-50밧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2년 전 이 빵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놀랄 만큼 낮은 가격을 보고 맛과 퀄리티도 그에 상응하는 정도겠지-라고 짐작하고 큰 기대 없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짐작이 틀렸다는 것 이제 내 미각세포들이 알고 있다.


시나몬롤 16밧 (약 600원) 실화인가요? 방콕 시내 베이커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착한 가격이다.
심심해 보여 손이 가지 않았던 레이즌 빵. 하지만 빵 결이 타로 빵과 같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코코넛 케이크가 없었다면 내 입으로 들어왔을 타이 아이스티 케이크. 다음에 만나자.
브레드 스틱과, 쿠키, 페이스트리 류도 이렇게 통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태국 동네 빵집에 없으면 섭섭한 바나나, 고구마, 타로 등을 튀긴 과자들.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왠지 빵집에서 팔고 있으면 괜히 더 맛있어 보이고 꼭 사고 싶어 진다.
에이스같이 기름지고 고소한 비스킷 사이에 한껏 졸여서 꾸덕해진 파인애플 잼을 샌드 한 마성의 과자





방콕에 오신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기 바란다.


Silom Village Restaurant (ร้านสีลมวิลเลจ ซอยสวัส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