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어른에게 속지 마세요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

by 건빵진소라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을 읽으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내가 나 스스로를 한심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한심한 인간을 분명하게 칭찬해주고 싶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찰하는 자아가 꽤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잘 작동하는 탓에 가끔은 스스로를 너무 낮춰 문제가 될 지경이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이 진짜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성찰하는 자아를 통해 나름대로의 자정작용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모든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태도나 감정 따위에 존재하는 불순물을 여과시키는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자신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진짜 어른의 면모를 서서히 갖춰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진짜 어른은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자격 조건 딱 한 가지는, 아니 야속하게도 딱 한 가지만 옹골차게 갖춘 셈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럴싸한 어른의 탈을 쓰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 태도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실수인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진짜 어른의 영역인 듯하다. 사실 실수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된다면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찰 전문가도, 진짜 어른도, 뭣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성숙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성찰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다고 성찰이 이미 저지른 실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가짜 어른들이 더러 있다. 특히 한 사람의 경우에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데도 이상하게 얼굴 잊을 즈음되면 연락해서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인 것 같다. 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벌을 파악한 이후로 나에게서도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슨 연유에선지 내가 어떤 주장을 펼치거나 생각, 감정을 전하면 하나하나 따져가며 반박하곤 한다. 생각이나 감정에 반박할 게 뭐가 있다고! 근데 거기에 나는 또 휘말려서 결국 핏대까지 세워가며 열변을 토하게 된다. 참으로 웃긴 건, 세월이 몇 년이나 흘렀음에도 그 사람의 옷차림부터 말투, 쓰는 말, 하는 행동, 상대를 대하는 태도 중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내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근데 그런 사람을 왜 만나냐고? 글쎄,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게다가 말은 날카롭게 해도 정은 또 많은 사람이어서 늘 동생인 나에게 뭐라도 해준다. 이런 거 말고 차라리 말이나 예쁘게 하면 더 좋을 텐데.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케이스는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진짜 어른과 가짜 어른의 경계에 놓이게 된 경우다. 그 사람은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어느 하나 성숙하지 않은 면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려 깊은 특유의 유머러스함까지 갖췄다니. 진짜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그 사람조차 가만히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조금은 염치없고 조금은 뻔뻔해졌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성찰하는 자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는데 다시 만났을 때에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한테 티를 내지 않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사람에게 그때의 순간이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자아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자아가 더 필요한 순간이어서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에게서 성찰하는 자아가 흐려졌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여전히 나에게 좋은 영감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은 맞으니까, 나는 그 사람을 곧잘 만나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물론 성찰하는 자아가 너무 강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골치 아파진다. 나의 경우 성찰을 너무 크게 하는 나머지 모든 일의 원흉을 나로 돌리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엄마가 동생을 따끔하게 혼내고 있으면 막상 사고 친 동생은 땡굴땡굴 눈알을 굴리면서 또 장난칠 태세를 하는데 오히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내가 스스로 없던 죄를 만들어 반성하면서 눈물 콧물 가릴 것 없이 콸콸 흘려댔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나를 한번도 제대로 혼낼 수 없었다고 한다. 언제든 반성하고 있으니까. 지금이라고 다를 게 없다. 뒷사람이 나를 밀치고 나가면 내가 그이의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어서 그 사람이 밀쳤다고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사고를 치거나 실수를 하면 나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지 되물으며 남몰래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때로는 이 정도면 윤리적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오랜 숙제는, 내가 진짜 저지른 일에 대해서만 반성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남이 저지른 일도 내가 저지른 게 아닐까 상상하지 않고, 책임을 따져야 할 땐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는 것.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성찰하는 자아가 큰 나에게 사람들은 자주 “착하다”라고 말한다. 착한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를 잘 참아주는 것, 책임 소재를 따질 때 상대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나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일정 부분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오늘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이 착한 거라면 나는 착한 사람인 편이라 할 수 있다. 성인이 되어서 어느 순간 내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건가, 싶었다. 그땐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최근에 심리상담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소라씨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해요.”

성찰하는 자아 하나만으로 먹고살기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상담시간 내내 내 마음에게 미안해졌다.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성찰하는 자아가 내 안에 너무 크게 존재해서 진짜 잘못한 사람들에게 화도 못 내고 사는 바보 같은 나. 그 뒤로 나는 내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 늘 살피고 결정하게 되었다는 엔딩이다. 성찰하는 자아가 너무 큰 것도 문제지만 너무 작은 것도 문제인 세상,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수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하면서 같이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전 05화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