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아픈 진실
대한민국에서 열아홉과 스물은 하늘과 땅차이다. 성인이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말이다. 성인이 되기 전의 우리는 많은 것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수능이라는 일생일대의 시험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곤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스물이 되고 알게 된다. 지금까지 누려본 적 없었던 자유로움이 주는 생경한 감각을.
나는 갓 스물에 많이 우왕좌왕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건 수능이 끝나자마자 몰려왔던 굉장한 크기의 공허함이었다. 마지막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는 시험장의 교문을 나서면서 너무 공허한 나머지 나에게 그림자가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 개운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오늘의 이 시험, 단 몇 시간 동안 치르는 이 얄궂은 시험 하나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부터 나는 또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하는 걸까,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주제였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그래, 일단 대학교부터 들어가고 생각하자.
몇 개월 후 드디어 말로만 듣던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은 때로는 낭만적이었지만 때로는 나를 시험하는 듯한 싸한 느낌을 주었다. 언제나 한 손에는 자유가, 다른 한 손에는 책임이 들려 있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나는 자유를 남들보다 잘 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을 선택하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탓이리라. 그래서인지 대학생활 내내 나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동안 온실 속에서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다가 갑자기 야생에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이었다. 어디 한번 알아서 잘 살아보라고. 대학교라는 곳도 그 감각의 발현에 한몫했다. 난생처음 보는 대자보에는 누군가가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글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동기들은 작금의 사회현상이나 정치에 대해 각자만의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보색의 색깔들이 예상외로 조화롭게 어울리듯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 다녔다. 교수님들은 마치 초등학생에게 사칙연산을 가르쳐주듯 참 쉽죠? 하며 첫 수업을 시작하셨는데 며칠 후엔 고3도 풀기 어려운 미적분으로 넘어가듯 난이도를 순식간에 높였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참 쉽죠?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딱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일반 회사를 염두에 둔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그래, 이제는 회사부터 들어가고 생각하자.
몇 개월 후 운 좋게 누구나 알법한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대학교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다. 돈과 사회적 지위가 얽혀있어서 더 그런 것일 테다. 앞에서 사람 좋게 웃으며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이 승진이나 자리보전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꽤나 씁쓸했다. 하물며 내 또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스무 살 때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다소 이상주의자에 가깝긴 해도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일들이 경이로울 정도로 많았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사무실에 앉아있노라면 숨이 턱턱 막혔다. 말 그대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돌이켜보면 공황 발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살기 위해 이직했다. 때로는 정치질하는 이들을 보며 신물이 나다가도 일이 재밌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아서 나름대로 잘 버텼다. 그래도 내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래, 좋아! 결혼하면 해결되겠지.
나는 스물아홉에 결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학에 가면, 회사에 가면, 결혼하면 해결되겠지 했던 일들이 결국 그런 방식으로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물론 해결하고 싶었던 일들 중 경제적 안정감은 결혼을 통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고려했을 때 이 또한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해서 얻어내야 할 부분이라는 걸 안다. 그 외의 고민들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자아관에 대한 것이라 답할 것이다. 나는 왜 정신적으로 단단하지 못할까, 나는 왜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까, 나는 왜 뚜렷한 주관이 없을까, 나는 왜?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으레 어른이라고 부르는 서른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나는 정신적으로 단단하고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으며 뚜렷한 주관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실체를 고발하자면 나는 우울증 약을 3년째 먹고 있으며 심리상담을 1년 넘게 받아 오고 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과 가족처럼 가까워졌다가 어느 순간 원수처럼 멀어졌다. 뚜렷한 주관이 없어 늘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누군가의 조언이나 피드백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기분마저 든다. 이 정도면 내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과 명백히 대척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노인들은 모두 점잖은 어른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로 꺼내진 않지만 우리는 모든 노인이 다 어른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성숙한 어른으로 이끄는 걸까?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살면서 겪는 경험들과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 그런 부류의 것들이 우리를 성숙함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나의 미성숙함이 빚어낸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궁극에는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혈기왕성했던 시절보다 무던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리고 그 무던함을 보면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어른스러워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것 역시 시간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그간의 세월 동안 감정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어른이 된다고, 나이가 든다고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것들이 다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괜찮아질 확률은 물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를 괜찮아지게 만드는 건 나를 자주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인생은 괜찮은 적이 없다. 때로는 괜찮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 우리의 인생을 괜찮게 만드는 것은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우리 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돌보자, 스스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