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순간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라는 무게

by 건빵진소라

“엄마, 나 화장실 가도 돼?”

어렸을 때 내가 엄마한테 했던 가장 황당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이 질문을 매일 입에 달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더 골 때리는 건 이 질문을 서른셋이나 먹은 지금도 엄마나 남편에게 수시로 써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가벼운 습관 정도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리현상이라는 아주 원초적인 행동마저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나의 이런 기제는 삶의 그 어떠한 것도 선택하기 버거워하는 내 밑바닥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렇게 터놓고 써보니 최소한의 자유의지를 가진 동물들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멀끔해 보이는 내 껍데기를 벗겨보면 실상은 이런 것인 걸 어쩌겠나.

한때 내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선택을 잘 내리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선택하는 것을 특별히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심 부러웠다는 것이다.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선택에 대한 고민이 빠른 이들, 그리고 뒤따르는 결과가 무엇이든 용케 받들어내는 이들이 용감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 눈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슈퍼히어로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장학생으로 유학의 기회가 있었던 엄마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유학을 포기하고 아빠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듣자 하니 친정 식구들의 반대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 되는 사람은 옛날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나, 얼마나 모질었던 건지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든다, 싶은 날이면 다용도실에 보란 듯이 유리병을 깨 놓았다고 한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엄마에게 평범한 날은 없었다. 그렇게 신혼 때부터 눈물 맺힌 유리조각을 아슬아슬하게 손 위에 쌓아왔던 엄마는 또 한 번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 공부하는 며느리 필요 없다는 시아버지, 즉 나의 친할아버지의 나날이 늘어가는 구박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아비 드실 밥을 차리며 꿋꿋하게 대학원을 다닌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엄마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석사가 되었다. 그 뒤로도 엄마의 선택은 계속되었다. 외국어 고등학교의 독일어 선생님이 되는 선택, 나와 동생을 갖고 낳는 선택, 임신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과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 떠밀려 학습지 선생님이 되는 선택, 그리고 끝끝내 엄마는 오랜 꿈이었던 선생님을 때려치우고 휘청이고 있던 아빠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 냈다. 엄마가 결혼이라는 첫 번째 선택을 한 나이는 고작 스물 넷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엄마에게 플랜 B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선택했으면 끝장을 보자는 마음가짐인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 선택에 뒤따르는 결과를 어리석을 만큼 혼자 묵묵하게도 책임져왔다. 엄마는 엄마의 선택이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음을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엄마의 하루가 모두가 아직 잠자고 있을 새벽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면, 나는 알 수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부분에서 엄마보다는 아빠를 닮은 모양이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다는 선택 외에는 단 한 번도 괜찮은 선택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중대했던 첫 번째 선택은 미국 유학이었다. 나는 열다섯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선포했다. 고백하자면 유학을 빙자한 도망이었다. 중학생 때 나의 성적은 모두의 기대치 이하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인데도 이대로라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의 첫 번째 선택과 달리 나의 첫 번째 선택은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려도 너무 여렸다. 그 정도는 견딜 생각으로 선택이란 걸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엄마의 거친 손 덕분에 예쁘게 빚어진 화초 같은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손 밖으로 나와 풍파를 맞으며 그렇게 그렇게 자꾸 시들어갔다. 내 유학은 그렇게 일 년 만에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였나,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된 나는 엄마와 열심히도 살았다.

하지만 엄마의 손 안에서 평생 숨 붙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성인이 되고부터 크고 작은 선택을 스스로 해보았다. 모든 선택이 근사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괜찮은 선택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그동안 몇 없었던, 나를 위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늘 한결같이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다가왔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온몸이 굳고 손에 식은땀이 나고 곧잘 어지러워진다. 선택이라는 행위에 알레르기나 트라우마가 있기라도 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선택은 늘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그런 내가 최근에 꽤 중대한 선택을 했다. 제법 고민한다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나의 일상은 완전히 박살 나버렸고 박살 난 일상의 파편들이 매일같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고 있다. 이쯤 되면 비집을 틈도 없을 텐데, 싶다가도 어느새 보면 신기하게도 또 하나의 파편이 꽂혀있다. 이 파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또 내 마음을 파고들지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나 스스로를 재앙의 근원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방어흔이 생긴 셈이다.

지금까지 크게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어느덧 서른셋이 된 걸 보면 내가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를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삶을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두렵더라도 자꾸 선택을 마주해야 하는데. 내게 주어진 삶이고 내가 견뎌내야 할 몫인데. 다행히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데에서 오늘도 위안을 얻는다. 파편이 박히고 방어흔이 생기더라도 상처 난 곳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그렇게 나를 어루만지면서 또 다른 새로운 선택을 준비해 본다.

이전 03화어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