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에게 조심해야 할 말
“소라는 참 어른스럽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나에겐 이런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도 그럴 게 맞벌이 부모님이 일터에 나가계시면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돌보는 건 오로지 내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를 바짝 긴장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그 당시 남동생의 고약한 심보와 보기만 해도 맥을 못 출 정도의 짓궂음이었다.
“엄마, 아빠 다녀올게.”
그 한마디는 고달픈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음과도 같았고 그 순간을 맞이하는 때면 나는 조용히 혼자만의 준비태세를 갖췄다.
동생은 나를 자주 왕 하고 물었다. 고양이들이 자기가 애정하는 사람을 핥으며 살짝 깨무는 러브 바이트 같은 행위였을까, 라며 아무리 합리화를 해보려 해도 아직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하찮은 이빨로 만들어낸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깊어서 러브 바이트 따위의 귀여운 것은 아니었다는 게 합당한 추측이다. 동생은 또 자주 나를 때렸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그것도 다섯 살 남짓한 조막만 한 녀석이 날리는 냥냥펀치만도 못한 주먹질은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설픈 것이지만 그때의 내 몸이 감당하기엔 꽤나 버거웠던 것 같다. 나도 어린아이였으니 말이다. 누나로서의 가장 큰 딜레마는, 동생이 때릴 때마다 이 조그마한 녀석을 역으로 패줄 수도 없고(때릴 데가 어딨 다고) 엄마처럼 호되게 혼을 낼 수도 없고(내가 말한다고 어디 들어먹나) 좋아하는 간식으로 회유할 수도 없고(습관이 되면 성깔만 더 나빠질 뿐), 아무튼 나보다 최신식 심장을 갖추고 돌진하는 이 녀석이 애틋하고 예쁘면서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동생은 그가 지나는 길에 표시라도 하고 싶은 마냥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쳐놓았다. 놀이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대책 없이 뛰어내려 팔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고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는 차 밑에 들어가 위험천만한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같은 배속에서 태어났지만 나랑 동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동생이 그런 사고를 칠 때마다 뒷수습은 누나인 나의 몫이었다.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가 사고 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애를 어찌할 줄 몰라 눈물을 훔치는 것처럼 나 또한 늘 눈물을 달고 살았다. 고작 일곱 살의 내가 제발 동생이 사람구실하면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된 게 그때부터였을까.
아무튼 이런 장난꾸러기 같은 동생 때문에 주변 어르신들은 보호자인 나를 안쓰럽게 보기도, 기특해하기도 했다. 옆에 끼고 사는 동생이 너무 막 나가는 덕분에 내가 사회적 이미지 측면에서 굉장한 호감도를 얻었으니 반사이익을 어느 정도 누린 것도 있다고 본다. 어쩌면 주변 어른들의 호감 어린 눈빛을 제법 즐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또래 친구들 중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라 생각해서 매일 반질반질 닦으며 어른스럽다는 말을 귀에 되새기곤 했는데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말이 이렇게나 내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어른스럽다는 말의 가장 큰 파장효과는 내게 화를 잘 감추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지게 했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화를 꾹 잘 참아내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그 말에 오래 묶여있던 나는 동생을 참았듯 일상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을 자주 참았다. 그렇게 나는 사회초년생 때 한의사 선생님 말에 따르면 ”결혼한 지 40년 된 엄마들이 짊어지고 있을 법한 화병“이 나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감추지 않고 참지 않고 뱉어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어른스럽다는 말은 나를 잘 책임지는 사람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하게 만들었다. 동생이 벌이는 사건사고의 총책임자였던 시절처럼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하나씩 일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나는 자잘한 일에는 엄청 일희일비하면서도 막상 엄청나게 큰일이 닥치면 그다지 놀라지 않는 편이다. 속으론 놀라 자빠졌는데 겉으론 티를 내지 않는 것이려나. 뭐, 그럴 때도 있겠다. 한 번은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내 앞에서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생 주제에 남자한테 차였다고 죽어도 괜찮다며 이상한 소리를 하며 술 냄새를 폴폴 풍겼다. 그리곤 내 앞에서 날카로운 무언가로 자신의 팔목에 상처를 냈다. 침대에 누워 슬슬 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신기하게도 그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친구에게 다가가 상처의 깊이가 깊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 흐느끼며 우는 친구의 등을 과장 조금 보태서 사정없이 팼다. 그러곤 새살이 솔솔 돋아나는 연고를 덕지덕지 발라주고 반듯하게 밴드도 붙여줬다.
“흉 지지 않아야 할 텐데 잘 모르겠어. 일단 빨리 낫도록 해.“
건조하게 이 말만 툭 내뱉고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연고 덕분인가, 그 밤 이후로 그 친구에게도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솔솔 돋아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더 아찔한 상황일 수 있었지만 그 정도였길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가 대처한 방식이 괜찮은 방식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한번 더 과장을 보태면 나에게 족쇄 같았던 어른스럽다는 말이 그 친구를 살린 셈이다.
어른스럽다는 말. 그 말은 진짜 어른이 될 시기가 아니었던 나를 언제나 제 나이보다 웃도는 나이로 살게 만들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보다 더 성숙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래서 많은 것을 참았고 태연한 척했으며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고 보니 남들의 말에 휘둘려버린 셈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 말을 아무 때나 남발하지 않기를 마음깊이 바란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나잇대에 맞는 삶을 앗아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