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눈물
소주잔을 든 손이 이리저리 하염없이 흔들린다. 그 안에 담긴 맑고 투명한 소주도 장단 맞춰 덩달아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요. 제가 그동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는.. 으아앙”
내가 최악의 주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삼십삼 년 만에 깨달은 순간이었다. 정확하게는 성인이 되고서부터 술을 마셨으니 십삼 년 만에 깨달았다고 치자. 술을 마신다고 매번 우는 건 아니지만 운수 좋게도 나의 주사를 라이브로 직관하는 자리에 당첨되는 이들이 꼭 있다. 그날은 하필 터져도 잭팟이 터진 날이었다. 그 술자리 이후로 다시는 나와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도 나타났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잘 우는 편이다. 우는 상황은 아주 다양하다. 기뻐도 눈물이 나고 슬퍼도 눈물이 나고 슬픈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난다. 마음이 찡해도 울고 꽁해도 운다. 여기까지는 혼자 흘리는 눈물이다. 문제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흘리는 눈물이다. 어떤 이에게 서운했다던가, 감정이 상했다던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거나 하는 부류의 감정들을 표현하다가 그 감정에 혼자 북받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경우다. 잭팟이 터진 날도 그랬다. 친한 선배한테 그간 서운했던 일을 털어놓다가 저렇게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던 것이다. 울음이 시작되면 나의 몸은 온몸으로 운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더 해야 할 말들도 뱉지 못하고. 마치 하고 싶었던 말들을 눈물에 꾹 눌러 담아 내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 눈물의 의미는 나만 알겠지만. 나 말고 한 명 더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건 남편일 텐데, 글쎄 내가 남편이 아닌 바깥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추태를 보이는 지경이 되니 내 상태가 퍽 심각하게 느껴졌다. 어김없이 심리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말 대신 눈물로 의사표현을 하는 건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아닙니다. 그건 사실 유아적인 행동 방식이죠.”
유아적이라는 단어로 서른셋의 나를 표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이래, 작게 읊조리면서 지난 내 눈물들을 돌이켜보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말을 해야 하는 구간을 종종 눈물로 채워왔다. 왜 이런 유아적인 습관이 생긴 걸까?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눈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내가 많은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그 행동이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득! 정말 그랬다. 특히나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많은 이득을 취했다는 걸 깔끔하게 인정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분명히 해두지만 일부러 우는 건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남편과 나 사이에 갑자기 서늘한 공기가 오간다 싶으면 눈물이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쪼르륵 떨어진다. 그러면 놀란 남편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그렇게 제대로 된 싸움이 발발하기도 전에 서늘한 공기는 세상에 없던 것이 되었다.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분이 왜 섭섭했는지, 그때의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지에 대해 머릿속으로는 질서 있게 단어들을 배치해 뒀는데 막상 남편의 눈을 마주하고 단어들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려 하니 또 눈물이 쪼르륵 떨어지며 입을 막는 것이었다.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말이 아닌 눈물로 커뮤니케이션의 일정 부분을 대신하는 사실이 새삼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다 보니 말하는 데에 품을 들이다가도 어느 순간 힘에 부쳐 말하기를 포기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이유를 추측해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상대의 안 좋은 감정을 강화하거나 자극하게 될까 봐, 혹은 내가 하는 말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을까 봐 지레 겁먹는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니 연약한 모습의 결정체인 눈물을 기꺼이 내보이면서 상대를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걸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남편과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첫날, 집밖으로 여행을 나서는 순간부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뜻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교통카드가 말을 듣지 않았고 이심이 말썽을 부려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으며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선물로 주려고 산 술병 하나가 캐리어 안에서 터졌다. 이밖에도 세상이 우리를 억지로 깐다는 생각이 들 만한 모먼트가 차고 넘쳤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정확히는 객실에 룸키를 꽂자마자 남편은 허공에 대고 마구 화를 냈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일단 울고 봤다. 처음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나중에는 남편의 품에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눈물에 많은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남편의 화가 빨리 수그러들었으면 좋겠다는 염원, 그런데 만약 그 분노의 대상이 나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내가 앞에 있는데도 이렇게 화를 표현하다니하는 서운함 등등. 이것들을 말로 표현하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이 될 수 있겠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계속 울었다. 다행인 건 그 뒤로 남편과 충분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그때 분노의 대상이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내 눈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개선방안까지 이야기 나눴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때는 아직 눈물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때였던 지라 그건 다음 기회에 남편과 다뤄보려고 한다.
눈물은 참 많은 걸 담아낸다. 일차적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고 나아가서는 눈물을 흘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이 대화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혼자 있고 싶은 건지, 그게 아니면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에게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건지와 같이 특정 의도를 담아내기도 한다. 의도라고 표현했지만 의식하지 못한 의도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찬찬히 뜯어봐야만 보이는 것이겠지. 이런 눈물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도움을 주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 속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눈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명쾌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록 아직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한 눈물 커뮤니케이터지만 나는 알고 있다. 눈물은 말을 잃게 만든다. 흘리는 사람의 입도 막고 보는 사람의 입도 막는다. 눈물을 흘리고 후련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더 답답해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는 게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앞으로는 눈물을 흘릴 때 왜 우는지, 이 눈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도 말고 딱 한번 정도만 생각해 보자. 그것이 어떤 이득을 취하기 위한 악어의 눈물은 아닐지 경계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