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상처를 무기로 삼지 마세요

나의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순간

by 건빵진소라

“소라씨, 그 사람 있잖아요. 진짜 꼴 보기 싫어요. 안 그래요?”

한때 내가 좋아했던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 친구는 말을 참 재밌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그녀가 나를 만날 때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특정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깎아내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동조를 원했다. 이런 부분에서마저 주관이 없었던 그야말로 미성숙했던 나는 그녀의 뒷담에 끌려다녔다. 나도 곧 사람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그녀의 말만으로 사람들을 재단했으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뒤에서 남을 종종 깎아내리는 사람이다. 물론 학생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이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 굳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썩 자랑스럽지는 않다. 물론 인신공격처럼 막 나가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위안을 얻어본다. 상대의 행동이나 말이 내 상식 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남편에게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털어놓으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또 한번 고백하자면 남편에게 특별히 조언을 구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어지럽힌 사람에 대한 욕을 털어놓으며 남편이 나의 편에 있음을 굳이 확인할 때도 있다. 때로는 이러한 뒷담이 나의 마음에 환풍기를 돌리듯 미묘하게 공기의 흐름을 바꾸어놓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 작정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경우다.

앞서 말했던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가 이 경우에 해당했다. 어쩜 그렇게 몇 개월 동안 한결같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나의 뒷담이 그녀의 뒷담과 뭐가 다르냐고 물을 수 있겠다. 나의 뒷담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뒷담이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추측성 발언들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점, 해결이나 환기에 방점이 찍혀있기보다는 무조건적인 까내림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출신지, 학벌뿐만 아니라 성격, 생김새, 습관, 옷차림, 태도, 연애 행태, 성적 취향까지 입에 올렸다. 나는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누군가의 은밀한 성적 취향까지 그녀의 입을 통해 알아버렸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그녀가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대학원을 나왔다는 점, 연애 경험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추측컨대 그녀는 학벌과 연애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에 열댓 번 넘게 그 얘기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앞담이 아니라 뒷담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나도 고역이었는데 당사자는 심각하게 상처 입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나며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을 때 그 사람이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가 그 사람의 콤플렉스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다. 콤플렉스가 아니라면 삶에서 관여도가 매우 높은 영역에 대한 것일 테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자기와 같은 학교, 즉 서울대에 가지 않아서 여전히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같은 학교에 갔다면 친구로 지낼 수 없었을 거란 뜻인데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나빠하지 않았던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다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남편과 너무 행복해 보여서 당분간 나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 친구는 종종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웃으며 넘겼던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합리적으로 추측해 보면 첫 번째 친구는 출신 학교나 배경에 대해, 두 번째 친구는 연애 경험이나 파트너에 대해 관여도가 높았던 것 같다. 학벌에 대해 유달리 관여가 높았던 첫 번째 친구는 사실 집안에서 늘 동생과 비교당하는 삶을 살았다고 나중에 밝혔다. 동생에게는 늘 머리가 좋다는 수식어가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동생을 언니인 내 친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단편적으로 스스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자신은 노력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만 그 노력을 단적으로 남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출신 학교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에 관여가 높아졌을 것이라는 게 내 추론이다.

두 번째 친구는 연애에서 실패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게다가 가정사에 대해서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라고 했다. 친구는 정서적으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남자를 원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는 자립심이 강하고 스스로 성취해 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친구가 나와 남편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과 비교했을 게 상상이 된다. 또 한 번 친구에게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연애 사실을 꽁꽁 숨기고 있던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 친구와 연을 끊었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복잡한 내막이 있기는 했으나 그만큼 연애나 사랑이 이 친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나 상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혹은 누군가에게 무심하게 한 마디 던져서 상처를 입히고선 자신의 콤플렉스와 상처를 이유로 들진 않았으면 좋겠다. 안다, 나 또한 이런 행동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제일 아프게 느껴지니까. 누구나 자신의 우주에서 가장 애틋한 건 자기 자신일 것이다. 나의 아픔을 이해받고 존중받기 위해선 나도 다른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가진 수많은 상처도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고 존중받기를 나는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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