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떠안을 필요 없다는 진리에 눈 뜨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료칸에서 일하게 된 센이 가마할범에게 찾아가 일을 달라고 사정없이 조르는 장면이. 그때 내가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있었는데 그건 센이 어떤 한 숯검댕이 대신 궂은일을 해주었던 장면이었다. 센이 큰맘 먹고 그 일을 힘겹게 마치자 다른 숯검댕이들이 자신이 하던 일을 보이콧 해대며 센에게 대신 일을 해달라고 보챘다. 그때 가마할범이 센과 숯검댕이들에게 쩌렁쩌렁하게 외친다. 다른 사람이 해야 할 몫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어쩐지 그 장면이 원목 테이블에 겹겹이 난 커피자국처럼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긴 것은 내가 센과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센이 숯검댕이들의 일을 대신했던 것처럼 내 몫이 아닌 일에 대해 마치 내가 대신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센의 경우처럼 각자 맡은 역할이 명확할 때 이런 감정은 퍼뜩 차린 이성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각자 맡은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다.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자 역할을 하던 내가 새로운 직무로 직업을 바꾼 적이 있었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이름의 역할이었다. 새롭게 몸담게 된 회사에서 나는 결과적으로 수많은 숯검댕이 중 하나처럼 내게 주어진 일 하나하나를 버거워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브랜드 마케터보다 광고 기획자가 적성에 더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랐던 그때엔 모든 게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게 주어진 몫을 해낼 능력이 없는 건가? 그 회사에 갇혀있던 20여 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내가 늘 던졌던 물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 몫의 일과 내 몫이 아닌 일을 구분하는 게 어려운 환경이었다. 일은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적당한 체계 따위는 없었으며 일하는 사람의 수도 한정적이었다. 나는 대체로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일이 내 몫의 일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따지지 않으려 했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했을 땐 그렇게 일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일진 몰라도 이거 누구 아이디어예요?라고 묻는 것조차 암묵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이 광고회사였다. 누구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랄게 뭐 있어, 함께 만든 거지,라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 합류했던 팀의 팀원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이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소라 씨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묘하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상한 역학관계가 생겨났다. 나 일 많이 했는데? 라며 너도나도 각자가 일했다고 생각한 총량, 일을 하면서 소모한 감정의 강도를 앞세우며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일을 많이 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공공연하게 생각되는 사람이 팀 안에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나 또한 최고 권력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일을 제일 많이 했다 하더라도 함께 일하고 있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공동의 목표에 전혀 가까워지지 못한 적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한때 내게 주어진 몫과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몫을 잘 구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업무 분장을 잘하는 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입이 삐죽 나오곤 했다.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일을 더 많이 한 것 같다는 감각이 들 때였다. 남들 일할 때 화장실에 몇 번 더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잠깐 커피 마시고 와도 되지 않을까? 나 저 친구보다 일 많이 한 것 같은데. 바로 아차 싶었다.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전우들 사이에 불순한 정치질이 끼어드는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많은 경우 내게 주어진 것에 비해 많은 것을 떠안으려 하는 것보다 내게 주어진 정량의 몫을 만족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내 몫을 완벽하게 끝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그때서야 다른 사람의 몫을 나누어 처리해도 될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몫과 몫을 나누는 셈에 능통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의 몫을 넘어선 몫을 해내는 것, 그것도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혼자 떠안고 혼자 힘에 부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일터에서도 그랬고 가족관계, 연인관계, 나아가 친구관계에서도 내 몫 이상을 해내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 사실 비즈니스보다 인간관계가 부여하는 해야 할 몫이 더 복잡한 종류의 것이었다. 수많은 이름표의 역할들이 가뜩이나 숨을 헐떡 거리는 사람들에게 너 이거 더 해야 돼, 라며 해야 할 몫을 웃얹어주곤 했다. 그럼 숨을 헐떡이는 사람이 자포자기하며 죽기 직전인 표정을 짓는다. 죽을 정도의 일이 아닌데. 사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해야 할 몫을 지우는 어떠한 것이든 모두 얄궂은 것이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짊어진 짐보다 더 많은 것을 껴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며 사는 것 같다. 우리 인간적으로 더 자주 상기시켜 보자. 내가 다 떠안을 필요 없다고. 조금은 더 뻔뻔하게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