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열고 드러내는 나에 대한 믿음
자기 확신과 고집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는 나와 내 친한 선배가 떠오른다. 선배는 내가 신입사원일 때 만난 첫 사수였다. 선배는 같이 맡은 프로젝트에 있어서 경력 하나 없는 나를 메인 담당자로 지정할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이었다. 더 담력 있다고 생각되는 건 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유관부서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일정 시간 지켜보다가 정말 꼭 필요한 순간에 조언을 해줬다는 것이다. 우왕좌왕 좌충우돌, 나의 성장기를 전혀 답답해하지 않고 찬찬히 지켜봐 주었던 선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만약 선배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1분 1초가 멀다 하고 선배를 지지고 볶았을 것이 눈에 선하다.
선배를 볼 때면 나는 선배가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나와 달리 선배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믿는 사람 같았다. 선배는 어떤 주제든 자기 주관이 뚜렷했고 그걸 잘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선배가 세상 넘어와 담쌓고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배는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믿으면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면 눈을 반짝반짝하며 그것을 곧잘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냈다. 그렇게 선배는 자신의 세상을 한 뼘 한 뼘 넓혀왔던 것일 테다.
선배와 나를 비교해 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다. 나는 자기 확신보다는 속 좁은 고집으로 얽혀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선배와 달리 나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고민이나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넘겼다. 다수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을 자양분 삼아 마음이 가는 길로 결론을 내곤 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내가 나 스스로를 선배와 비교했을 때 가장 부끄러운 점은 내가 무언가에 대해 몰라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뭘 잘 모르는 것이 내 콤플렉스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르는 것 앞에서 선배는 솔직하게 모른다 이야기하고 그것을 알아갈 기회를 스스로 얻어냈고 나는 애써 아는 척하느라 그것을 제대로 알 기회를 잃어왔다.
그런 선배가 아홉 살 차이 나는 나를 보며 나이에 비해 생각이 참 많은 애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자기 확신의 아이콘인 선배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생각 많은 나의 면모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나를 인정해 주는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슬프다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내 존재를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에게 먼저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선배는 스스로를 믿을 줄 아는 멋진 어른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선배는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보라고. 나의 감정, 태도, 행동은 통제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통제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순순히 인정하고 그것들에 대한 내 감정, 태도, 행동을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해 보라고 했다. 선배도 사람인지라 많이 흔들리지만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나의 감정, 태도, 행동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안의 것들을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실상 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 잘도 착각하며 살았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이라고 자책하면서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선택들이, 내가 지나온 삶이 대체로 틀린 것이라 말할까 봐 자주 두렵다. 오답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것도 이 단어가 언젠가 나를 향해 들려오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고집이라는 단단한 벽을 세우고 귀를 닫는다. 나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를 누구보다 믿지 못해서라는 사실이 참 웃기고 슬프다. 이렇듯 자기 확신과 고집은 많은 지점에서 서로를 닮아 있다. 매번 자기 확신인지, 고집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고집이 마음의 문을 꾹 닫고 있는 형국에서 틈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어떠한 행태라면 자기 확신은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형국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자신감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성숙한 사람들은 고집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자신이 지금 자기확신과 고집 중 어떤 기로에 서있는지 꾸준히 돌아본다고.
어떻게 해야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걸 알아차리기에 삼십삼 년은 나에게 짧은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를 믿는 힘, 앞으로의 레이스에서 내가 얻어야 할 것.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남은 레이스를 달려보려 한다.